매일신문

[장하빈의 시와 함께] 니기미/김창제(1960~ )

장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는 그 아저씨

기분이 좋아도 니기미!

힘들어도 니기미!

저놈의 입엔 니기미가

주렁주렁 조롱박같이 붙었다

사장이 보너스를 줘도 니기미

니캉 내캉 술 한번 씨기 묵자 니기미

니기미가 밥이고

니기미가 신발이고

니기미가 모자인

주름살 사이사이 퍼지는 니기미

새싹이 올라온다고 니기미

꽃이 진다고 니기미

시냇물이 조잘댄다고 니기미

무지개가 희한하다고 니기미

켜켜이 니기미가 얼매나 쌓였길래

오늘도 싱싱한 니기미, 니기미가 몸 풀고 있다

니기미, 니기미

―시집 '경계가 환하다' (학이사, 2016)

* * *

장하빈 시인·문학의 집
장하빈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니기미'는 '네미'(너의 어미)의 경상도 방언으로, 몹시 못마땅할 때 욕으로 내뱉는 말이거나 자조적 한탄으로 쓰이는 감탄사다. "사장이 보너스를 줘도 니기미/ 니캉 내캉 술 한번 씨기 묵자 니기미" 이렇듯 막노동하는 아저씨 입에 "주렁주렁 조롱박같이 붙어" 있는, 이 막장 같은 말 '니기미'는 여기선 한낱 욕설이라기보다는 추임새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니기미가 밥이고/ 니기미가 신발이고/ 니기미가 모자"라니! 이 얼마나 흥에 겨운 랩 가사인가? 반복되는 박자 리듬에 맞춰 힙합이나 깨끔춤이라도 추어야 할까? "새싹이 올라온다고 니기미/ 꽃이 진다고 니기미" 이렇게 입만 뗐다 하면 '니기미, 니기미'! 아무런 구김살 없이 넉살스럽게 터져 나오는 '니기미'가 우리 생의 "주름살 사이사이 퍼지"어 나가는도다. 오, 니기미! 이 가을도 무탈하게 훌훌 떠나보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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