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70) 전 대법원장이 재임 시절 자신의 집무실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만나 재판절차를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징용소송을 둘러싼 재판거래 의혹의 최종 책임자가 양 전 대법원장이라고 보고 이달 중순께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피의자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이 2015년 5월부터 이듬해 10월 사이 최소 세 차례 대법원장 집무실과 음식점 등지에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 모 변호사를 만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한 변호사에게 징용소송을 최종적으로 전원합의체에 넘기겠다는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방침을 설명하고 전원합의체 회부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한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 방식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 변호사는 신일철주금 등 전범기업의 소송을 직접 대리하지는 않았지만 김앤장 내에서 송무팀을 이끌고 있었다. 검찰은 그가 청와대 및 대법원 수뇌부의 재판 계획을 김앤장이 공유하는 데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행정처 조사국장과 법원도서관장 등을 지내고 1998년 김앤장에 합류한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연수원 4년 후배다.
한 변호사는 임종헌(59·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는 대법원 등지에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며 징용소송 방향을 수시로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한 변호사가 임 전 차장과 논의한 재판계획을 양 전 대법원장이 최종 확인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2일 한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이후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을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확인하고 관련 내용을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61)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에 이날 적시했다.
사법부 수장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이 징용소송의 대리인 측과 여러 차례 직접 접촉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청와대·외교부-법원행정처-김앤장이 유착한 재판거래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김앤장은 재판거래의 '직접 당사자'인 청와대·외교부와 법원행정처 사이에서 광범위한 인맥으로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한 변호사가 집무실에 찾아갈 정도로 양 전 대법원장과 가까운 사이였다면, 곽병훈 변호사는 김앤장에 있다가 2015년 법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의 연락책 역할을 했다. 곽 변호사는 이듬해 5월 김앤장으로 복귀한 뒤에도 징용소송 관련 현안을 법원행정처와 논의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 수장'이었던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당시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면서 소송 지연 과정에 가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행정처는 유 전 장관을 통해 외교부에 의견서 제출을 독촉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대법원은 소송규칙을 바꿔가며 징용소송에 정부 의견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했지만, 외교부가 국민 정서 등을 감안해 일본 기업에 유리한 의견서 제출을 미루는 상황이었다.
김앤장은 2012년 5월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향후 재판에 대비했다. 당시 김앤장 고문으로 있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도 TF에 합류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첫 외교부 장관으로 사실상 내정된 2013년 1월 주한 일본대사 출신인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미쓰비시 중공업 고문을 만나 재판대응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장관은 2013~2014년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린 이른바 '소인수회의'에 참석해 일본 기업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비밀에 부쳐진 대법원 내 심리 방향을 재판의 일방 당사자에 유출했다는 점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공무상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은 당시 전합 회부 여부를 결정하는 전원합의체 소위원회 위원장이자 전원합의체 재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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