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미역, 세대를 연결시켜주는 인연의 끈

김정희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딸 아이가 미역국을 찾는 걸 보니, 보양식이 필요한가 보다. 맛있는 것을 먹고 힘내고 싶을 때, 딸은 친정엄마가 만드신 미역국을 찾는다. 다행히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는 나의 음식 솜씨에 안도하면서, 찬물에 미역을 불려본다. 미역은 참 재미나게 생겼다. 물 속에서 자란다는 점도 신기한데, 긴 지느러미를 닮은 모양마저 특이하다. 이런 미역을 왜 우리 선조들은 아이를 출산하거나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생일날 끓여 먹었을까.

김정희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김정희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나도 여느 산모와 마찬가지로 첫 딸을 낳았을 때, 미역국을 먹었다. 한 여름에 태어난 우리 딸 덕분에 광어를 넣은 시원한 미역국을 맛봤다. 평소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친정엄마의 특별한 메뉴였다. 딸 아이는 마치 그 때 맛본 친정엄마의 미역국 맛을 기억하듯, 격려와 지지가 필요할 때 이렇게 미역국을 찾는다.

나 또한 엄마의 첫 딸이다. 엄마도 나를 낳고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 한 그릇을 비웠을 것이다. 그리고 넘쳐나는 젖을 내게 물렸을 엄마의 모습은 마치 나의 육체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성모 마리아와 닮았을까. 딸 아이와 달리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 맛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사랑이 엄마를 통해 전달되었던 그 탄생의 순간을 생각하면, 탯줄을 통해 전달된 그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미역은 긴 모양만큼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인연의 끈일지도 모른다. 마치 탯줄처럼 말이다. 또 그 인연의 끈은 매년 다가오는 생일날을 기점으로 다시 연결된다. 운동장의 길게 널려진 만국기처럼 한 해의 추억이 깃든 사진을 남기면서 말이다.

미역국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온 나는 지인이 초대한 가요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가요제에 참석한 대부분이 60대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40대 초반인 뭔가 모를 부적절함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짧은 영상이 소개되면서 가요제는 시작됐다. 영상의 내용은 우리 부모세대가 지금까지 한국이라는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영상이 끝난 직후, 가요제의 분위기는 다소 경건함이 맴돌았다.

불과 몇분 전의 부적절함 대신 감사와 존경심이 가득 차올랐다. 너무나 당연해서 가끔은 잊고 있었던 마음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살았을 엄마의 삶은, 어쩌면 한순간 한순간 지탱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힘겨울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순간의 고비를 넘기며 나를 낳아준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그 때였다. 미역국을 보면서 느꼈던, 내 안에 전달된 그 무언가가 다시 느껴졌다. 나와 엄마가 다시 연결되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안다. 추운 겨울에 인력거를 끌면서 살아가는 노인에게도 삶의 빈곤함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그도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도 사랑과 생명력, 삶의 지혜가 있다는 것을. 오늘도 삶의 고비마다 그들은 어떻게 헤쳐 나갔을지 궁금해하며, 그들의 지혜를 듣는다. 맛있는 미역국을 먹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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