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폭발적인 흥행돌풍을 일으키면서 퀸의 히트곡들이 다시 울려퍼지고, 보컬 프레디 머큐리 역시 생전의 인기를 되찾았다. 영국 록 밴드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이미 북미에서 음악 전기영화로선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한국 내에서도 지난 3일 누적관객수 604만 명을 넘어서면서 국내 개봉된 음악영화 중 최고 히트작이 됐다. 앞서 음악영화 중 국내 극장에 소개돼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은 592만 명을 동원한 '레미제라블'이었다. 600만 명 돌파 이후에도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가도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이 다시 극장을 찾는 재관람 열기가 고조돼 누적관객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아이맥스관, 스크린X관에서 영화를 본 이들은 시설이 뒷받침되는 곳에서 봐야 '보헤미안 랩소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며 재관람을 부추기고 있으며 퀸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4050세대들 역시 추억을 향유하고자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노래를 따라부르며 즐길 수 있는 '싱어롱 상영회'도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와 함께 부각되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어떻게 북미를 넘어 한국 관객까지 사로잡았을까.

#한국 관객 정서에 부응하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미 12월 초까지 북미 지역에서 1억6천442만 달러, 북미 외 국가에서 3억7천514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영화의 제작비를 약 5천200만 달러로 추산하고 있으니 이미 들어간 돈의 10배에 해당하는 성과를 거둬들인 셈이다. 국내에서도 '마약왕' '스윙키즈' 등 연말 기대작들이 개봉되는 12월 셋째주가 되기 전까지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장기 흥행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는 북미와 유럽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이현상이다. 실제로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성적은 그룹 퀸의 본 고장인 영국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높은 편이다.
달아오르는 속도 뿐 아니라 확산력까지 좋은 한국 영화시장의 특징은 이미 할리우드 영화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북미 외 지역 중 한국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던 케이스가 수차례 발견됐고, 한국 총 인구수에 대비해 생각해보면 영화와 극장 사업이 이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는 국가가 드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과거 국민 상당수가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던 90년대에는 전문가들도 분석하기 쉽지 않은 예술영화가 '꼭 봐야할 작품'이란 타이틀과 함께 국내 대중에 널리 유통돼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1995년 단관 개봉돼 10만 관객을 모았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다. 관련 공부를 좀 했다는 사람들이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작품인데도 한번쯤 봐야 잘난 척을 할 수 있다는 분위기 때문에 극장에 관객이 꽤나 몰려들었다. 참고로 필자 역시 대학생에 불과했던 당시 오만가지 책을 다 찾아읽고 나서야 '희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달아오르는 속도'와 '확산력'이란 표현을 쓴 것도 이 때문인데, 그만큼 한국 관객은 '분위기'에 민감하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호평을 고려해 봐야 할 영화를 고르고 또 그렇게 관람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란 사실을 입증하려 한다. 그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단 화제가 된 작품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쉽게 참지 못하고 뚜껑을 열어보고 싶어하는 습성도 분명 있다. 또 한 편의 영화로 인해 논란이 불거질 경우 본인의 사고가 찬성과 반대 어떤 진영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극장 표 결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소위 '화제성'이 한국 관객의 표심을 자극하는 주요한 지표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 관객의 이런 특성 때문에 종종 큰 기대를 얻지 못했던 작품이 '대박'을 터트리기도 한다. 그러나 뭐가 됐든 한국 관객을 움직이는 영화는 분명 국내 정서를 건드릴만한 명확한 무기가 있어 시장에서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국 내 흥행 비결은 그룹 퀸의 익숙한 음악, 그리고 그로 인해 소환된 과거의 향수다.

#음악과 함께 시절의 향수 공유
프레디 머큐리와 퀸이 전성기를 누리던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팝과 록 음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시절 국내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디오에서는 미국과 영국 팝 음악과 록 밴드의 히트곡들이 흘러나왔고 매주 빌보드 차트 순위를 점검하는 시간이 고정적으로 마련돼 해외 음악의 트렌드를 알 수 있게 해줬다. 지금이야 K-POP의 인기와 함께 한국 음악이 세계로 알려지는 수준이 됐지만 90년대까지도 음악 좀 듣는다는 마니아들의 이어폰에서는 항상 영어로 된 가사가 흘러나오곤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위 윌 록 유' '크레이지 리틀 싱 콜드 러브' 등 퀸의 히트 넘버들은 그 당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꼭 알고 있어야 할 필수 청취곡 리스트에 들어가 있었던 노래들이었다. 특히나 퀸의 넘버들은 단순히 록 넘버의 개념에서 벗어나 대중이 쉽게 듣고 즐길 수 있는 곡들이 많아 밴드 전성기 이후에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등의 공식 또는 비공식 모음집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다. CM송으로 쓰인 곡도 다수였고 영화음악이나 그 외에도 각종 영상물의 BGM으로 사용돼 4050세대보다 더 젊은 층까지 확산된 상태다. 앞서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가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때도 극중 사용된 그룹 아바의 친숙한 히트곡들이 흥행에 주요한 역할을 했었다는 평가가 나왔었는데,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음악이 결정적인 흥행성공 요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국내에서 '위 윌 록 유'나 '보헤미안 랩소디'의 멜로디를 모르는 이를 찾아보는 것이 오히려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니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혹 나이가 어려 퀸이라는 밴드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친숙하고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굉장히 단순하고 촘촘한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한국 관객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던 건 80% 이상이 음악의 힘 때문이었다고 봐야 한다. 내러티브는 아쉽지만 퀸의 공연 장면은 실황 중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멋지게 재연해냈다. 또 멀티플렉스의 값비싼 영사 및 사운드 장비가 제 몫을 톡톡히 해낸 덕분에 관객은 마치 퀸의 콘서트를 눈 앞에서 즐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과 함께 전설이 된 밴드 퀸 완전체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다니 이건 그 시절을 기억하는 4050세대에겐 마치 폴 매카트니의 내한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즐기며 그 때를 떠올려보는 좋은 기회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물론, 폴 매카트니 라이브 공연과 배우의 연기를 통해 재연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만 관객이 스스로 그 정도의 착각 속에 빠져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말을 하기 위한 비교다. 4050 타깃층은 물론이고 젊은 층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음악의 힘을 갖췄으니 음악영화 좋아하는 한국 관객이 열광하는 것도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는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마냥 실존인물과 흡사하게 잘 재연된 극중 밴드 퀸 멤버들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성공과 함께 극중 등장한 최대 규모의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에 대한 관심도 새삼 커지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7만 2000명과 9만명의 관객을 모아두고 각국의 A급 뮤지션을 총출동시켜 펼친 역사적인 공연으로, 당시 전 세계에 위성 중계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공연이다. 지난 2일 MBC가 다시 라이브 에이드 공연 녹화본을 방송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폴 매카트니, 믹 재거,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다시 커지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들어낸 현상들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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