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 부근에는 오래된 가게가 많다. 1906년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유곽으로 지정되어 백 년 넘게 자리를 지킨 자갈마당을 상대로 장사하는 노포들이다. 미용실부터 구식 점방까지 50년 이상 자갈마당과 동고동락해 온 가게도 있다. 이달 말 자갈마당이 완전히 문을 닫으면서 이들도 도원동을 떠난다. 상인들은 자갈마당이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말한다. 자갈마당 업소 아가씨들이 자주 이용했던 미용실, 세탁소, 슈퍼 주인들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들어본다.
▶50년 자갈마당 상권 시세
아가씨들은 매일 관리를 받기 때문에 머리 손질이 쉽다. 염색이나 파마보다는 간단한 드라이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아 최신 트렌드가 필요 없다. 50년 전 일명 '시다'로 도원동에서 미용 기술을 배울 때도 그랬고, 44년 전 가게를 차릴 때도 현재도 마찬가지다.
명자(가명) 씨는 50년째 자갈마당 아가씨들 머리를 만지고 있다. "한때는 여기 아가씨가 500명이 넘는다고 했어. 밖에 줄 서고 소파에 앉아 기다리기는 사람도 많았지." 자갈마당에서 장사하면 돈을 쓸어 담는다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실제로 상상을 초월했다.
친척 돈을 끌어모아 열댓 평 남짓한 공간을 400만 원을 줘야 살 수 있었다. 당시 폭등하던 서울 말죽거리의 평당 가격이 5천원 대였다. 처음 가게 문을 열 때만 해도 좁은 골목 안에 미용실 아홉 개가 밀집해 있었지만 지금은 세 집만 남았다. 70년대 천 칠백원 하던 드라이 가격은 현재 만 원이다.
자갈마당 미용실은 보통 저녁 6시부터 9시까지만 문을 열었다. 짧은 영업시간에 간단한 머리 손질만 하면 되니까 장사가 수월하다 싶었지만 금세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자갈마당 미용실은 '아가씨만 찾는 가게'로 인식되어 일반 손님이 오질 않았다. 아가씨 손님들은 간단한 드라이만 받고 가기 때문에 고급 미용기술이나 비싼 기계가 필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부 미용실과는 기술 격차도 장비의 차이도 벌어져 자갈마당 밖에서 장사하기 어려워졌다. 명자 씨는 아가씨는 줄어도 자갈마당을 떠날 수가 없었다.
성매매 단속이 있을 때마다 장사를 접어야겠다 문을 닫았지만 아가씨 전화를 받고 다시 자갈마당으로 돌아왔다. "자갈마당 없어진다는 얘기는 많았지. 단속 심할 때는 1년 넘게 미용실 닫아 둔 적도 있어. 근데 자갈마당엔 다시 사람이 몰려들더라고. 진짜 없어지는 게 맞나 몰라."

▶가깝고도 먼 이웃
슈퍼에는 가지런히 진열된 물건이 한눈에 들어왔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담배, 음료 정도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집어갈 물건 몇 개뿐이다. 눈에 띄는 것이 가게 입구에 진열된 커다란 옷핀. 실제 옷핀으로 쓰기엔 너무 커다랗고 레트로 패션 소품으로는 과하게 촌스럽다. "그거 침대에 시트 고정하는 핀이야. 옛날엔 많이 나갔는데 지금은 팔리지도 않아. 하나 줄 테니까 그냥 가져가든가." 그 외에는 특별하다고 할 만한 물건이 없다. 피임 용품을 계산대 뒤에 두고 꺼내주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새는 찾는 사람이 없어 치워 버린 지 오래되었다.
주인장은 40년 넘게 매일 가게를 지켰지만 정작 아가씨들과 마주칠 일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다들 사연을 가지고 왔을 거란 생각에 얘기라도 들어줘야겠다 싶었지만 대부분 뜨내기고 길게 말을 섞지 않았다. 예전에는 아가씨들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고 지금은 자갈마당에 아가씨가 없다. "가끔 시집간다고 떠나는 아가씨들이 있었는데 금세 돌아오더라고. 물어보기도 불편하고 무슨 일 있었는지 말도 안하지."
자갈마당에는 6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탁소도 있다. 아가씨들이 입는 옷에서도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고급 요정이 유행할 때는 자갈마당 아가씨들도 한복을 입어 세탁소에는 매일 치마저고리가 쌓여 있었다. 80년대부터는 짧은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고 최근엔 복장이 다양하고 자유로워졌다. 특히 직접 세탁할 수 있는 기능성 옷이 많이 입어 세탁소를 찾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
▶상인들은 아가씨 걱정이 앞서
도원동 상인들은 자갈마당 인구만 상대하더라도 충분히 먹고 살았기에 자리를 지켰지만 이제는 문을 닫고 떠날 준비 중이다. 이곳 상인들은 자갈마당이 경기를 덜 타는 동네라고 말한다. 물론 호황일 때 지갑을 여는 사람이 많지만 씀씀이가 줄어들어도 외국인 노동자나 자갈마당이 필요한 이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성매매 단속이 있을 때마다 영영 문을 닫을 것 같았지만 자갈마당은 다시 불을 밝혔다.
자갈마당에서 30년 이상 식당을 운영한 주인장은 자갈마당 여성들을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했다. "이 동네 상인들, 자갈마당 덕분에 돈 벌고 자식도 키웠는데 아가씨들 도울 생각을 왜 안 했겠어요? 무슨 사연이 있어 남들 눈치 보는 일 하나 궁금해도 그쪽에서 말도 안 섞고 우릴 피하는걸. 우리야 이제 살 만큼 살았고 장사도 할 만큼 했어요. 아가씨들이 어디로 갈지 걱정이네요."
이달 말이면 자갈마당이 완전히 폐쇄되고 도원동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백 년을 버틴 유곽도 주변 상인들도 이곳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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