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벽(癖)과 덕 <2>

대구능인고교사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지난주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해서 성취를 하고자 하는 성격을 뜻하는 '벽'(癖)과 어떤 대상을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의미가 강한 '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는 '벽'을 가지고 있는 학생을 우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벽'은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덕질을 하고 있는 것은 부모들의 큰 근심거리다.

하지만 '벽'이 있는 아이들은 사회성이 부족하고, 주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우울증이 있는 경우도 많다. 반면 '덕'이 꼭 아이들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주에 있는 후배네 딸은 아이돌 그룹 세븐틴 '덕후'였는데, 오로지 세븐틴을 더 많이 보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해서 서울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우리 집 큰애도 중학교 때부터 세븐틴 콘서트에 가고 관련 물품들을 사는 데 용돈의 대부분을 탕진했어도, 자기가 하는 것을 인정해 주면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그런 대로 지켰으니 딱히 나쁜 것은 아니었다. 요컨대 '벽'은 뛰어난 성취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항상 뛰어난 성취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덕'이 공부에 방해가 될 수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활의 활력소로서 새로운 추진력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벽'과 '덕'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여기에서 '벽'을 가지고 있던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대학에 진학해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취리히 공과대학의 민코프스키 교수가 우연히 그의 수학 답안지를 채점했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민코프스키는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포기하려고 하는 아인슈타인을 직접 찾아가 재수를 권하면서 아인슈타인에 맞는 아라우 공립학교를 추천해 주었다. 엄격한 독일의 김나지움과 달리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아라우에서 열심히 공부한 아인슈타인은 1년 만에 취리히 공과대학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살린 것은 교육 제도보다 우연과 특이한 인연들의 영향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재를 키우는 것은 일반적인 교육 제도로는 어렵다. 그에 대한 보완책이 영재 프로그램이고, '벽'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펴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경시대회이다. 이에 대해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이 금기시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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