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거리 괴롭힘' 여전…여성 괴롭히는 불쾌한 접근

주차된 차량에서 전화번호 찾아내 무차별 접근해 '헌팅'
보복 두려워 강하게 대응못해…도움청할 곳도 마땅치않아

#회사원 이모(31) 씨는 최근 낯선 중년 남성에게서 SNS 메시지를 받았다. 이 남성은 '주차장에서 봤는데 너무 예뻐서 용기를 내 문자를 보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남성은 이 씨의 승용차에 남겨져 있던 연락처를 몰래 저장한 뒤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분노와 불안감에 휩싸인 이 씨는 응대하지 않았지만, '1박 2일로 대구에 왔다', '커피 한 잔 하자'며 추근대는 남성의 메시지는 계속됐다. 이 씨는 "승용차에 남긴 연락처를 노리는 남성들이 많아서 아예 남자친구나 남편의 전화번호를 남겨두는 친구들도 있다"고 푸념했다.

#지난 7월 퇴근길에서 회사원 전모(24) 씨도 섬뜩한 경험을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전 씨를 계속 쳐다보던 중년 남성이 전 씨를 따라 버스에 오른 것. 슬금슬금 피하는 전 씨에게 접근한 남성은 대뜸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전 씨는 "정말 빌려주기 싫었지만 거절했다가 해코지를 당할까봐 무서워서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갔다"고 한숨을 쉬었다.

거리나 커피숍, 버스정류장 등 일상생활 속에서 접근하는 낯선 남성들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막무가내로 말을 걸거나 전화번호를 몰래 채간 뒤 수작을 거는 남성들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피해를 입으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2015년 4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접수된 '길거리 괴롭힘' 사례는 231건에 이른다. 이 중 성추행이 57건으로 가장 많았고, '시선, 몸짓'이 55건을 차지했다. 폭언이나 언어적 성희롱도 47건이나 됐다.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여성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불쾌한 시선이나 언어는 상상을 초월한다. 회사원 조모 씨는 "젊은 남성들의 이른바 '헌팅'을 당하면 정말 불쾌하지만 해코지가 두려워 강하게 반발하기도 어렵다"면서 "한 번 그런 경험을 하면 누가 가까이만 다가서도 화들짝 놀란다"고 토로했다.

거리나 번화가, 대중교통 등에서 여성들을 노리는 몰래카메라도 공포의 대상이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 9월말까지 검거된 몰카 범죄는 무려 1천111건에 이른다. 한해 평균 몰카 범죄로 검거되는 인원만 150여 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길거리 괴롭힘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성들은 모르는 타인이 다가올 경우 의심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남성들은 그저 용기있는 행동 정도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여성을 성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한 게 원인"이라며 "여성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와 상대방을 배려하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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