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어느 죽음의 평가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동생을 대신해 죽어서(代弟而死) 어버이의 뒤를 잇게 하다(爲親之嗣).'

대구에서 청도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달성군 가창면 냉천의 한 산속 포장길을 오르면 소나무 숲 한 야산의 무덤 앞에 작은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행정 당국에서 세운 안내 간판도 옆에 있는 '의로운 누이(義姊) 이 낭자(李娘) 무덤'이다.

간판 설명을 보면, 무덤의 주인공은 조선 순조 때 이씨 성의 냉천 산골 아가씨이고, 부모가 밖으로 나가고 없는 사이 집에서 불이 나자 방 안의 젖먹이 남동생을 몸으로 감싸 안고 불길을 막아 자신은 끝내 숨졌으나 대신 동생은 살렸다는 사연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기리는 추모 글에서, 앞의 비문에 어울리는 문구 즉 '감라의 나이(甘羅其齡), 섭앵의 뜻(聶嫈乃志)'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뛰어난 소년 재상 '감라'와 의로운 자객이라는 '섭정'과 그의 누이 '섭앵'이 등장하니 말이다.

당시 대구의 관리였던 조종순(趙鍾淳)이란 판관이 이런 사연이 깃든 소녀의 죽음을 의롭게 보고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면서 기리는 시를 새겨 넣을 당시, 중국 역사 속 인물인 두 사람을 굳이 넣은 까닭은 그만큼 소녀의 행위를 잊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을 터이다.

특히 소녀가 12세여서 12세에 재상이 돼 죽은 감라를, 동생을 대신한 죽음은 자객으로서 임무 완수 뒤 혹 누이에 해가 될까 스스로 낯가죽까지 벗기고 죽은 동생(섭정)을 모른 체 않고 동생의 의로움을 세상에 떳떳이 밝히고 자결한 누이(섭앵)에 빗댔으니 말이다.

지난 8일, 꽃다운 12세에 죽음을 맞은 소녀의 무덤과 비문을 살피면서 세월호 사찰 혐의로 전날(7일) 자살로 60년 삶을 마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소식이 떠올랐다. 투신한 곳에는 '당신의 죽음은 조국을 위해 헛되지 않을 것'이란 추모 글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 전 사령관은 유서에서 '모든 부하들은 선처됐으면 좋겠다. 우리 군과 기무사는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일했다'는 내용을 적어 둔 모양이다. 한 소녀의 죽음조차도 평가된 옛 역사를 보면 뒷날 그의 죽음 역시 가늠되고 기록될 것이다.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