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역 앞에 있는 전통일식집 '대성암(大成唵) 본가'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경북 최고 노포(老鋪) 초밥집이다. 일제강점기 때 시작해 초밥 하나로 70여 년의 역사를 써온 대성암 본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지금은 손자 정창호(43) 씨가 주방을 지키고 있다. 아직도 1대 할아버지가 일본인에게 배운 방식 그대로 맛국물을 내고 초밥과 우동, 어묵탕을 만들어 내놓는다. 3대에 걸쳐 이어온 가게답게 맛집의 풍미가 느껴지는 대성암 본가는 아직도 대를 이어 손님이 찾아올 정도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손자가 운영
'대성암 본가'의 시작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때 한 일본인이 김천초등학교 앞 문화센터 모퉁이 어디쯤에 초밥집을 열었다. 정준용(작고)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이곳에 직원으로 들어갔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주인은 일본으로 돌아갔고 초밥집은 적산(敵産: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으로 남아, 정 씨가 자연스럽게 인수했다. 그 가게는 6·25때 포격을 맞아 불탔다. 정 씨는 원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김천역 건너편 인근에 초밥집을 열었다. 당시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던 김천은 유동인구가 많아 장사가 잘됐다. 초밥과 우동, 어묵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김천과 인근 도시는 물론 전국에서 손님이 모여들었다.
2대 홍영(75) 씨는 10대 때부터 아버지께 붙잡히다시피해서 일을 배웠다. 해병대 군복무를 마치고 1960년대 후반부터 아버지와 함께 초밥에 인생을 걸었다. 1972년 1대 준용 씨가 세상을 떠나자 26세에 대성암을 물려받았다.
대학에서 전산을 전공한 3대 정창호(43) 대표 역시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돕다가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 그 맛을 이어오고 있다. "어릴 때부터 초밥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봤으니 가업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당연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일본인에게 전수받은 옛날 방식 그대로 육수를 내고 음식을 만들어 낸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것이라 메뉴판 하나 바꾸기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 초밥, 우동, 어묵이 메뉴 전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가게에는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냄비와 장식장이 훈장처럼 남아 있다. 12평 남짓 공간에 6개(4인)의 테이블이 전부다. 입구 한쪽 주방에는 어묵 가마가 달착지근한 맛국물의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고 초밥을 만드는 정 대표의 손길이 분주하다.
메뉴판도 단촐하다. 초밥과 우동, 그리고 어묵탕이 전부다. 여름이면 메밀우동을 내놓는다. 초밥의 종류도 과거엔 김초밥, 유부초밥, 생선초밥이 전부였는데, 수년 전에 문어, 새우, 연어, 장어 초밥이 메뉴에 포함됐다. "맛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단촛물 비율이 조금만 달라져도 맛은 달라진다. 단촛물 맛이 같다 해도 정성을 들여야 한결같은 초밥 맛이 나온다"고 했다.
대성암 본가는 일본인에게서 배운 비법을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 그리고 자식이 물려받아 그때 방식 그대로 음식을 만든다. 맛국물도 할아버지 때부터 하던 방식 그대로 투박하다. 일단 정성과 시간을 맞추는 게 관건이다. 국물멸치를 삶아 건져내 간장으로 간을 맞춘 후 다시 끓인다. 다시마를 넣고 끓기 시작하면 비린 맛을 잡기 위해 정종을 넣는다. 다시 끓이다가 이물질이 뜨면 건져내 국물을 맑게 한다. 그리고 달군 무쇠를 끓는 육수에 담근다. 잡다한 맛을 없애기 위해서란다. 다시 끓이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맛국물이 탄생한다.
어묵탕은 달콤한 무와 쫄깃한 곤약, 고소한 두부와 담백한 어묵이 육수를 머금어 풍미가 느껴진다. 우동은 도톰한 면발이 매끄러우면서 말랑말랑하고 그러면서도 쫄깃한 탄력을 잃지 않았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도 다녀가
일제감정기 때 시작해 초밥 하나로 70여 년의 역사를 써온 가게답게 단골도 많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 등 역대 대통령이 이 집 초밥을 맛봤다.
김영삼의 가신이었던 김동영은 아버지와 호형호제하며 지냈던 사이었다. 정 대표는 "당시 야당 총재였던 YS와 정치인들이 다녀가면 경찰에서 아버지를 불러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꼬치고치 캐묻곤했다"고 전했다.
(박스) ◆ "대성암은 꼭 지킬 터 "
대성암 본가는 현재 정 대표와 직원 2명이 가게를 꾸려 나가고 있다. 2대 홍영 씨는 가끔 가게에 나와 한번 둘러보고는 그냥 나간다. "그냥 지켜보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손님도 줄었다. "경기 침체에다 신도시로 손님을 뺏겨 예전에 비해 손님이 줄어 힘들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일화를 소개했다. 오래 전엔 우리나라에 관광차 왔던 어느 일본 여인이 일제감정기 때 김천에 살던 대성암 사장 딸이라며 인사하더란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성암 간판이 여전히 살아 있음에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가끔 이민간 손님도 찾아와 아직도 간판을 그대로 내걸고 장사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갔다"며 "이래저래 맛을 바꿀 수도 문을 닫을 수도 없다"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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