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에서 생활하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동시에 내원했다. 다섯마리 길고양이가 동거하는 가정에 4개월 전 막내(2·수컷)가 입양되었다. 그런데 첫째인 양이(8·수컷)가 막내를 견제한다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둘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둘의 다툼은 더 격렬해졌고 최근에는 다른 고양이까지 싸움에 합세하여 그야말로 "고양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호자는 우려했다.
양이와 막내는 둘 다 심인성 방광염(FIC)과 고양이배뇨장애(FLUTD)로 진단되었다. 심리적 불안상태가 지속되면 발병하는 대표적인 심인성 고양이 질병이다. 치료는 동일했지만 둘의 입원 관리에는 차이가 있었다.
내성적인 양이에게는 몸을 숨길 수 있는 박스를 제공하고 신경안정제를 추가 처방하였다. 비교적 쾌활한 성격의 막내는 주변이 잘 보이는 입원 칸을 배정하고 간호사들이 자주 놀아주도록 하였다. 퇴원하는 날 보호자에게 둘의 다툼이 지속되는 이유와 고양이 전쟁을 막기 위한 방법을 설명했다.
◆고양이 전쟁, 작은 갈등이 싸움으로 번지는 이유?
고양이는 현재 반려화가 진행 중인 동물로 각 품종이 가지는 본능에 따라 각 개체의 성향과 표현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 낯선 고양이와의 합사는 서로 다른 습관과 언어를 가진 이방인과의 불편한 동거에 비유할 수 있다. 특히나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동거가 시작된다면 다툼의 여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야생의 고양이들은 서로의 영역과 짝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적정한 타협이 존재한다. 서로에게 치명적인 외상은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이와 막내의 다툼이 장기화하는 이유는 서로의 일상 패턴과 표현하는 행동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성급하게 합사한 탓이 크다. 서로가 "오지마" "날 내버려 둬"라고 표현하지만 두려움과 불안감이 고조된 심리 상태에서는 작은 갈등도 다툼으로 번지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나 고양이들이 공유해야 할 공간이 좁고, 식기와 화장실이 적을수록 분쟁의 가능성은 커진다.

◆고양이 전쟁 피하는 법
고양이행동학 전문가들은 고양이들 간의 다툼을 줄이고자 단계적인 친화 과정을 권장하고 있다.
▷친화준비단계: 입양할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와 친화될 때까지 별도의 방에 격리한다.
▷친화 1단계: 케이지로 격리하여 탐색하기.
입양할 고양이를 케이지 안에 두고 다른 고양이들이 생활하는 방에서 기존 고양이들이 탐색할 기회를 제공한다. 어느 쪽이든 하악질을 하거나 경계심이 높아진다면 별도의 격리된 방으로 이동한다.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질 때까지 반복한다. (서로의 냄새 정보와 행동 언어를 체험하는 과정)
▷친화 2단계: 짧은 시간 직접적인 대면 시도하기.
입양할 고양이를 다른 고양이들이 생활하는 방에서 기존 고양이들과 대면 할 수 있도록 하고 보호자는 하드보드지를 들고 있다가 어느 쪽이든 하악질이나 경계 행동을 보이면 서로의 시야를 가려서 다툼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하드보드지만으로 다툼을 막을 수 없다면 1단계로 돌아간다. (서로가 적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과정)
▷친화 3단계: 합사.
본격적인 합사 후에도 잘 지내는가 싶다가도 돌발적인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기존의 고양이들이 누리던 공간이나 화장실을 간섭받지 않도록 고양이 개체 수 이상의 식기, 물그릇, 화장실 등을 비치하여 갈등의 요인을 줄여준다.

3주 뒤 양이와 막내의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 있었던 양이와 막내 역시 이러한 단계적인 친화 과정을 통해 서로의 행동 언어를 이해하고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익히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길고양이를 입양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입양하는 것은 한 생명을 구하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길고양이 한 마리 더 입양하려는 애틋한 마음이 고양이들에게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보호자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길고양이의 입양은 생명을 구하는 최고의 배려지만, 정작 입양되는 고양이는 그저 새로운 환경이 두렵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급급한 심리 상태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고양이의 복잡다단한 행동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진정한 애묘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양이들에게 보호자가 영원한 집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 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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