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에서 알아주는 부자로부터 5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은 적이 있다. 시골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이 분은 경제인으로 활동하면서 민선 자치단체 의원으로도 족적을 남겼다.
그와는 처가 쪽에 친분이 있고, 출입처에서 기관장과 기자로 만난 인연이 있다. 오래전 인사차 그의 회사에 들렀는데 손때 잔뜩 묻은 상품권을 건넸다. 만지작거린 흔적이 역력했다. 지역 사회에서 돈에 인색하기로 소문났기에 대접받은 느낌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그가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가입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12월 설립한 개인 고액기부자 클럽이다. 1억원 이상을 한 번에 내거나 5년 이내 납부를 약정하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된다.
그는 부인, 아들, 딸 등과 함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당시 가족이 한꺼번에 가입해 화제가 됐다.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옮기지 못했고 얼마 안 돼 그의 부고를 접했다.
운명을 앞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게 아닐까.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생전에 좀 더 일찍 더 많은 기부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매일신문이 매주 화요일 연재하는 '이웃사랑'은 그 이전부터 '燈'(등)이란 컷으로 사회면 등에 실렸고, 사연을 안타깝게 여긴 독자의 성금 기탁이 이어졌다. 매일신문은 성금을 받아 신문에 실린 당사자들에게 전달했다. 1990년대 초 담당 업무를 맡은 기자는 성금을 받은 뒤 간이 영수증을 끊어줬는데 이를 받지 않으려는 익명의 독지가들이 많았다. 성금을 착복하거나 유용할 수 있기에 현시점에선 납득하기 어렵지만, 매일신문에 대한 공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현재 '이웃사랑'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역본부를 통해 기부 영수증을 발행하고 있다.
연말연시 '기부의 계절'이지만 한파만큼이나 기부 손길이 얼어붙었다. 사회복지모금회가 시행(지난해 11월 20일~1월 31일)하는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예년보다 낮다고 한다.
증가세를 보이던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자도 지난해에는 줄어들었다. 아너 소사이어티 경북 가입자는 2017년 20명이었으나 2018년 14명에 그쳤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성금 착복과 유용 등이 뉴스가 되면서 기부금 모금 단체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탓도 있다.
기본적으로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높아지려면 경제 사정이 좋아져야 하고 기부 단체를 신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기부 문화의 확산이 더 필요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일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지만 선행이 남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은 자기 일에 열정적이며 기부를 당연한 사회적 책임으로 여긴다. 기부로 즐거워하며 마음의 명예를 얻고자 한다.
최근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무대는 개인에서 부부, 가족, 친구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너 소사이어티를 비롯한 기부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숨어 있는 알짜 부자들의 통 큰 기부가 절실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의 기부 동참도 요구된다. 새해에는 내가 아는 이들의 기부 소식을 더 많이 접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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