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숙 시인이 시집 '내 남편 김의부씨의 인생궤적'을 출간한 지 9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마트료시카'를 출간했다.
오랜 공백 끝에 두 번째 시집을 낸 지은이는 "너무 오래 방치해 두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어린 시절이 깃들어 있는 뜨묵골 능금나무 과수원은 늘 그리움이었다" 며 "오래오래 묵힌 그리움이 이제는 시의 날개를 달고 날아가 허공에라도 꽂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는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으로 인형 안에 작은 인형이 있고, 그 안에 차례로 더 작은 인형들이 들어 있다. 이 시집 표제이기도 한 마트료시카는 시인의 어머니가 살아온 세월과 그 속에 든 겹겹의 사연을 은유한다.
87세에 세 살배기 아이가 돼 버린 어머니는 인형 안에서 인형이 자꾸 나오는 마트료시카를 만지작거리며 옛 기억을 하나씩 들추어낸다. (2018년 현재 어머니 연세는 91세)
어머니 방 협탁 위에 놓아둔 한 쌍의 마트료시카는 어머니가 아직 소녀였을 때(일제 강점기), 남지나해로 징용간 외삼촌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정신대를 피해 일찍 시집간 사촌언니가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세월을 따라 멀리 떠난 줄 알았던 옛 일들이 기억도 체력도 쇠약한 세 살배기 어머니 앞에 차례로 나타나 옛일을 들추고 온방을 휘젓고 오장육부를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다.
김위숙 시인은 "마트료시카와 쫓고 쫓기느라 만신창이가 된 어머니를 차라리 마트료시카 속 더 작은 마트료시카로, 또 그 속 더 작은 마트료시카로, 또 그 속 더 작은 마트료시카로, 그래서 아주아주 얌전했다는 갈래머리 소녀 그 옛날로 돌려 드리고 싶다"고 노래한다. -어머니, 마트료시카와 놀다- 중에서.

시인은 경산의 과수원집 맏딸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사랑은 극진했고, 따서 창고에 넣어 둔 사과에서는 향기가 일어나 온 동네골목으로 퍼져나갔다. 그 짙은 사과향 속에서 김위숙 시인은 키가 자랐고, 시적 감수성이 자랐다. 그 시절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빨갛게 익은 풍작은/ 여덟 식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다. (중략) 왁자하게 능금 궤짝에 담긴 붉은 웃음들이/ 쌓이던 기와집/ 무더기무더기 집채 보다 넓게 퍼지는 향기들(하략).'
평화롭고 아름다운 낙원은 그러나 망가졌다. 과수원은 고속도로와 공단에 편입됐고, 더 이상 사과향은 골목을 따라 동네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시인은 체념하지 않는다. 대신 '빈들에 한 그루 능금나무로 꽃 피우리'라고 노래한다.
과수원이 공단으로, 또 고속도로로 편입된 현실은 낙원의 종말인 동시에 시인의 소녀기와 작별이기도 했다.
'쇠젓가락으로 파마하고/ 옆집 뾰족구두 신은 언니/ 빨간 루주 입술을 탐나도록 훔쳐보던 그때/ 나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 생콩 비린내 나던 사춘기였다.' -생콩 비린내- 중에서
시인은 당시의 자신을 생콩잎으로 설명한다. 어른들은 생콩잎을 삭히고 묵히기 위해 묵직한 돌을 얹어 눌렀고, 시인은 그 돌의 무게를 벗어나 한 장씩 한 장씩 낱장으로 일어나고 싶어 했다. 제멋대로 일어나서 활개치고 싶은 생콩잎의 소망을 부모님이 들어줄 리 없었다. 사춘기 아이들이 누구나 그렇듯 시인은 어머니의 바람을 강요와 압제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소녀는 아가씨가 되고, 나이든 어른이 되었다.
이 시집은 총4부 67편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과수원집에 살았던 어린 김위숙을 추억하는 작품들이 많다.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은 "김위숙 시인의 작품 바탕에는 소녀기의 아름다운 전원생활이 깔려 있다. 그러나 단순히 추억을 담는 차원을 넘어 추억의 편린과 현재의 일상을 뭉쳐 하나의 신선한 구조를 이룬다. 그것이 김위숙 시의 보편적인 묘수다" 며 "훗날로 오면서 쓴 시는 실험성을 지닌다. 차츰 시어가 지시성을 버리면서 재현적 기능을 버리고 언어의 통합체, 언어의 구성물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평하고 있다. 김위숙 시인은 경산에서 태어났으며,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143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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