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통신] 악재 앞의 대통령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당부하던 말씀이 있나요?" "기억나는 말씀은 겸손하라는 거예요. 겸손하면 자기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하셨어요. 돌아보면 아버지 인생이 그러셨어요."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기자가 목격한 문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취임 100일을 맞아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여민관을 출입기자들에게 개방했을 때의 기억이다. 기자들이 대통령과 사진 촬영을 위해 대통령 자리를 비워놓고 포즈를 잡은 채 기다렸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오더니 두리번거리며 주저했다. 한가운데 자리를 비워뒀지만 대통령은 그 자리에 털썩 앉지 않았다. 기자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눈으로 물어보고 있었다. 눈치챈 기자들이 "여기 앉으세요"라고 외치자 그제야 그는 멋쩍은 듯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문 대통령은 초교생을 만나면 무릎을 굽혀 눈 맞추며 인사했고, 지난해 말 포항 지진 현장에 와서는 이재민들의 얘기를 듣겠다며 체육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의 행동에는 겸손이 묻어 있었다.

취임 초기 84%(한국갤럽 조사)에 이르렀던 지지율이 '개업 효과'가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60% 후반~70% 초반의 지지율을 이어갔던 이유였다. '이랬던' 문 대통령은 "경제가 어렵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데도 지난달 20일, 제조업 회복세를 언급하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황당한 발언을 내놨다. 이달 초 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의 기자 간담회에서는 "국내 문제는 질문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입술에서 겸손을 더 이상 읽어내기 어려웠다.

주식시장의 격언 중에 '악재는 혼자서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추락하는 경제상황 속에서 청와대 직원의 시민 폭행 사건·실세 비서관의 음주운전·청와대 특감반원 비위 의혹에다, 특감반원이 민간에 대한 사찰을 했다는 주장까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주식시장 격언은 문재인 정부에도 들어맞는 말이 됐다. 문 대통령의 취임 직후 나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응답이 "초심을 잃지 말라"였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겸손한 대통령. 그가 평생 간직해온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은 악재를 호재로 돌려놓으며 박수 받고 떠나는 첫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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