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갤러리 탐방]스페이스 B 김진 개인전 (28일까지)

김진 작.
김진 작.

성탄절이 돌아왔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성탄절은 사람을 들뜨게 하는 뭔가가 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1년365일을 성탄절을 위해, 정확하게는 성탄전야에 모든 걸 쏟아 붓기 위해 살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이젠 아니다. 모든 게 심드렁해졌다. 집에 크리스마스트리조차 준비하기 귀찮은 나이가 되었다. 요즘엔 트리 모양도 갖가지라서 초록색 침엽수 잎에 울긋불긋한 색이나 금은빛깔의 장식물을 아기자기하게 매어다는 방식 말고 한두 가지 것들로 간략하게 장식한 나무도 점점 눈에 띈다. 다양함을 충분히 반영할 건지, 단순함의 미덕을 살릴 것인지 선택하는 일은 취향의 문제다.

마치 크리스마스 특집과도 같이 예사롭지 않은 전시를 서양화가 김진이 우리에게 펼쳐놓았다. 그 또한 마음을 정하지 못했나, 작가는 다색화와 단색화 두 가지를 벽에 걸었다. 서로 대비되는 두 연작은 경쟁이라도 하듯 공간을 차지한다. 색이 많은 쪽이 형이고, 흑백의 드로잉이 동생뻘이다. 어쩌면 이 모노톤의 그림은 이 시즌을 맞아 공개한 스페셜 에디션이 될 수도 있겠다. 그 작품에 흠뻑 빠진 나로서는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길 원하지만.

김진의 그림은 실내를 묘사한다. 그는 영국에 살던 시절에 자신이 머물던 방을 탐닉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의 붓질은 매기 햄블링(Maggi Hambling)의 그림처럼 쓱쓱 그은 선들의 조합을 이루어 윤곽을 완성하고, 미묘한 감정은 아스게르 요른(Asger Jorn)처럼 뚜렷한 색으로 담아낸다. 그가 다양한 색으로 힘차게 그은 선은 우리에게 해방감을 준다. 그런데 이번 전시의 신작을 통해 작가는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색을 툴툴 털어냈다.

버림을 통해 그가 새로 얻은 이미지는 또 다른 방이다. 그건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 실내 이미지다. 작가는 왜 이걸 그렸을까? 호텔에 들어가면 뭔가 사람을 으쓱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작가가 이런 속물근성을 미술관의 관람 태도와 연결 지으려는 착상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그림 속 호텔이 어딘지 직접 그림을 보며 알아맞히길 권한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도통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 법도 하다. 아무튼 김진의 작품이 여기까지 이른 게 본인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이건 일종의 모험이다. 이 정제된 공간에서 그가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필선은 완벽에 가까운 대립이다.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스페이스B에 가히 어울리는 엔딩이다.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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