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원화랑 김종언 '밤새...'전

김종언 작
김종언 작 '밤새'

"풍경을 그리지만 늘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작업을 합니다."

짙은 회색톤의 화면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화면 곳곳에 푸른빛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시점은 새벽인 것 같다. 오브제는 다닥다닥 붙은 처마와 지붕,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있는 골목길, 어두운 밤 홀로 빛을 내고 있는 어슴프레한 가로등….

인적 없는 심야의 풍경이 왠지 모르게 정겹다. 화면엔 분명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데도 보는 이의 느낌은 한없이 따뜻해져 온다. 이게 무슨 일일까? 작가 김종언의 말처럼 풍경을 그리지만 풍경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일까. 그들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동원화랑이 이달 31일(월)까지 전시하고 있는 '김종언-밤새…'전은 10호에서 100호 작품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맞닥뜨린 밤풍경들이 펼쳐져 '예술을 감상하는 건 또 다른 힐링'이라는 명제에 부합하고 있다.

올해로 그림 입문 34년째. 밤풍경을 그린 지는 10여 년째. 전업 작가인 김종언은 이번 전시를 맞아 작가노트에서 "눈 내리는 하얀 밤 얼기설기 얽힌 골목길. 동 트기 전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의 바쁜 걸음처럼 나는 정신없이 골목길 모퉁이를 돌고 돌아 발자국을 남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많은 생각과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어 "훗날 그곳의 눈처럼 나의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가 쌓여지면 좋겠다"고 바란다.

이처럼 화가 김종언은 차가운 밤풍경을 통해 따뜻한 삶을 드러낸다. 회사후소(繪事後素'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의미로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을 비유)의 격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김종언의 작품을 보면 회색톤의 화면 기조에서 가로등 빛은 밤풍경의 어두운 부분과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 가로등은 누군가를 위해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어두운 전체 화면에서 유난히 가냘프게 밝은 가로등 빛은 보는 이의 감성을 더 따뜻하게 하는 특유의 심상으로 이끈다.

김종언이 화업에 들어선 이래 일관되게 다루어 온 주제도 연기, 안개, 비, 눈 등이다. 이런 것들은 자연을 살아 움직이는 생명적 현상으로 보는 화풍이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의 예술세계를 논하자면 2가지 관점으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자연이라는 실체의 바깥이 아니라 자연의 실체 속 생명적 현상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현대사회가 물질문명이 발달됐다손 치더라도 그 속에서 삶의 생기를 얻은 수 있는 길은 자연뿐이지 않는가. 김종언은 바로 이 점에서 자연의 체취를 화폭에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인간 신체 표면의 감각이 아니라 몸속 영혼으로 느끼는 심성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현란한 감각의 시대에 표피적인 가치보다는 따뜻한 가슴을 강조하는 김종언의 그림은 감각에 매몰된 예술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의 밤풍경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두운 밤 속에서 인간 자신의 느낌을 밝혀주는 맑고 순수한 생명감을 얻는다. 문의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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