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범국가적 경제불황에 탈원전 후폭풍까지, 탈출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지역 경기를 나타내는 지표는 잇따라 추락하고 있고 덩달아 인구마저 줄어드는 모양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위기의 나락에서 울진군은 천혜의 자연유산을 활용한 '치유'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울진군은 원전 일변도의 경제구조와 흔하디흔한 관광산업을 버리고 치유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선택했다. 여기에는 풍부한 산림과 해양자원이 동력을 불어넣었고 이런 자원이야말로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더해졌다.
◆탈원전 정책에 꽁꽁 언 울진
대한민국 역대 최고 경제위기를 꼽으라면 당연히 IMF 시기를 떠올린다. 앞이 보이지 않던 그때, 하지만 울진 만은 예외였다.
1992년부터 시작된 한울원전 3·4호기 건설이 1999년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고 곧바로 2005년까지 한울원전 5·6호기 건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입된 금액만 각각 3조5천500여억원과 4조7천여억원.
막대한 건설자금은 IMF 기간, 울진은 물론 경북지역 경기 활성화와 지역 고용을 견인했다. 이 때문에 울진에서는 "IMF가 언제 있었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상승 그래프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발표되면서 급격하게 바닥으로 꺾였다. 정부의 발표는 울진의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원자력학회의 '신한울원전 3·4호기 도입에 따른 지역경제 기여효과' 조사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으로 울진에서만 60년 동안 67조원의 산출액이 증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울진의 원전에너지산업 의존도가 60%(직·간접 영향 포함)에 달한다는 점만을 봤을 때 울진의 추락은 어쩌면 당연한 일.
비록 명확한 경기지표는 없지만, 지난 2016년 1천119억여원과 지난해 1천116억여원 등 꾸준했던 울진군 세수액이 올해 910억여원(예상치)에 머물렀다는 것을 볼 때 울진에 불어닥친 한파는 강도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기간 발전소 관련 세입액은 433억여원에서 319억여원으로 114억원 이상 줄었고, 인구 역시 같은 기간 5만1천738명에서 현재 5만164명으로 1천574명이 감소, 뚜렷한 내림세를 보였다.
결국 울진군은 내년 예산을 5천823억원으로 올해(7천35억원)보다 1천212억원 줄이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다.
◆위기 탈출 해법은 치유
울진군은 슬로건을 '생태문화관광도시 울진'에서 내년부터는 '숨 쉬는 땅 여유의 바다'으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 8년 만에 메인 간판을 바꾸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새 슬로건은 '살아있는 자연에서 여유를 즐긴다'는 의미다. 머물면서 힐링할 수 있는 울진을 만든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고 했다.
여기에는 원전 일변도의 경제구조를 타파해 더이상 외부 정책에 휘둘리지 않을 탄탄한 미래 먹거리를 갖추겠다는 의지가 깔렸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최근 울진군의회에서 가진 시정연설에서 치유산업 육성정책을 천명했다.
각종 치유 관련 기관을 유치하고 바이오산업 연구를 발전시켜 울진을 힐링의 도시로 변모시키겠다는 것이다.

울진은 그 첫 행보로 해양치유센터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까지 평해읍 월송리에 R&D기관, 치유기관, 워터파크 등을 짓겠다는 계획으로 울진의 장점인 해양·산림·온천을 난치병이나 피폐한 심신을 고치는 데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군은 지난해 해양헬스케어단지 조성사업이란 이름으로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해양수산부로부터 해양치유 실용화 R&D 협력 지자체 선정을 받아냈다.

울진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와 경북해양바이오산업연구원이 운영 중이며 2020년에는 국립해양과학교육관도 문을 열 예정이다.
또한 동북아시아 허브 마리나항만으로 국제 후포마리나항만이 개발되고 있어 활발한 해양산업을 연계한 해양수산 과학 중심도시로의 도약도 꿈꿔볼 만 하다.

울진에는 바다 외에도 금강소나무라는 천혜의 산림자원이 존재한다.
울진군의 산림면적은 84.706ha로 군 면적의 85.6%를 차지한다. 이 중 침엽수림만 전체 산림의 56%에 이른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금강소나무 군락은 침엽수립 비중에서도 92%로 절대적이다.
산림욕의 효능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치유산업에서 바라는 여러 강점을 울진은 이미 선점하고 있었던 셈이다.
올해 울진은 구수곡휴양림 인근에 금강송치유센터를 건립, 휴양시설·휘트니스센터·전통방식을 이용한 치료시설 등 각종 편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0월 박원순 서울시장과 전찬걸 울진군수의 만남으로 상호간 교류협력을 약속한 서울시는 이후 금강송치유센터를 서울시 공무원 연수시설로 활용키로 했다.
내년부터는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250억원의 국비가 지원돼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 국립소나무연구센터가 지어진다.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볼 만 하다.
한국소나무연구센터, 아트리움, 야외연구원, 소나무숲길 조성 등이 들어서며 한국의 대표적 생물자원인 소나무의 체계적인 연구 및 보존, 한국 소나무의 우수성을 국내·외로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 밖에도 복지종사자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시설인 '사회복지 에코힐링센터'의 매화면 오산리 건립이 논의되고 있다.
건립 타당성 분석 결과 이 지역이 최적합 판정을 받아 420억원(국비 294억원)의 사업비가 배정됐다.
사회복지사공무원 1만6천여명, 복지시설 종사자 55만명, 보육 교직원 33만명, 요양보호사 151만명이 대상이며 이들을 위한 트라우마센터, 숙박시설, 명상·오감치유길 등 자연치유시설이 갖춰질 예정이다.

◆국비 확보가 관건
무수한 구슬이 있어도 꿰어야 '보배'다. 울진의 희망찬 계획에는 구슬을 꿰는 실 역할로써 예산이라는 큰 준비물이 필요하다.
이에 울진군은 국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6일 전찬걸 울진군수는 내년도 지역 현안 및 국비 예산 확보를 위해 직접 국회를 방문했다.
예산 결산특별위원회 김현권, 장제원, 김성원, 이채익 의원과 면담을 갖고 동서 5축 36호선 국도 사업 예산 증액과 매화~온정 국지도 69호 사업, 군립추모원 건립, 사회복지에코힐링센터 사업 등의 국비 반영을 건의했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관련해 울진군의 입장을 전달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지금의 울진은 진심으로 변화가 절실하며 이를 위한 무모함마저 필요하다"면서 "무소속 초선이라는 타이틀이 약점이라고 생각됐지만, 오히려 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을 펼치며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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