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송구(送舊)하고 영신(迎新)하자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보름 전 아들이 같은 반 친구 두 명과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발표가 난 다음 날 출발해 6박 7일 일정으로 교토와 오사카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부모 동의 체험학습이라는 형식인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학부모 동의를 받아 신청하고 학교장이 허락하면 학기 중에도 자녀들의 단독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들은 이전에도 방학 기간을 이용해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끼리만 이렇게 여러 번 여행을 보냈지만 그리 불안하지는 않았다.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멀지도 않을뿐더러, 치안이 선진 어느 나라 이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 문제에 관한 한 세계 제일 수준이라고 믿고 있다. 아이들이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만 행동한다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매우 낮은 나라이기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주, 우리나라 강릉에서는 고3 학생들 여럿이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간 학생도 있다지만 몇몇은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모양이다. 내 아들 또래일 학생들의 죽음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려왔다.

그 학생들도 내 아들처럼 고3 시간의 마지막을 위해 추억 여행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리지 않았는가. 여행을 허락하고 펜션까지 예약해준 부모들의 심정이 어떨지….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내 나라 안에서 여행을 하던 아이들은 목숨까지 희생당하고 말았다.

안전하지 못한 대한민국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학생들만은 아니다. 그리 멀리 볼 것도 없다. 12월 한 달 동안에만도 여기저기에서 안전사고가 연이었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는 꿈 많던 24세 청년이 심야에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을 거뒀다. 달리던 KTX 열차가 탈선하는 대형사고도 일어났다. 서울의 한 대형 빌딩에서는 붕괴 위험이 발견돼 입주자들이 한겨울 길바닥으로 쫓겨났고, 뜨거운 온수관이 터져 행인을 덮치는 사고도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독감 치료용 타미플루를 복용한 여중생이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일어났다. '사고 공화국'이란 말을 실감한 한 달이었다.

2인 1조 근무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져 사고 당시 그 청년의 옆에 누군가 있었더라면, 철로 선로전환기의 신호 설계를 처음부터 꼼꼼히 체크했더라면, 빌딩의 시공이 설계대로 잘 되었는지 안전진단을 제대로 했더라면, 의사와 약사가 약의 부작용에 대해 한마디라도 해줬더라면, 보일러 배관 연결을 무자격 시공업자에게 맡기지 않고 제대로 점검했더라면…. 안전이 무너진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만시지탄이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여러 가지 사고로 가슴이 많이 아팠던 2018년이었다. 며칠 전에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1주년도 지났다. 수십 명의 목숨과 바꾼 교훈이 있는데,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안전하지 않다. 여전히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되고,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안전불감증, 인재(人災) 같은 후진적 단어들은 떠나보냈으면 좋겠다. 새해엔 안전 문제에 대해서만은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맞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송구(送舊)하고 영신(迎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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