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자식 과년하면 반중매쟁이 된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자식이 스스로 결혼도 못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부모가 해결해 주려고 하다 보니 반중매쟁이가 된다는 것이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요즘 세상 기준으로 보면 '자식 수험생이면 반입시전문가 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자식이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진학하는 것이 가장 좋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자식은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부모 마음은 그것을 두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돈과 시간을 자식에게 투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부모가 그렇게 투자를 하지만 자식은 항상 부모 뜻대로 잘 따라오고,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식은 자식 나름대로 인격체로 부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식은 참 가성비가 떨어지는 존재다. 부모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힘들게 낳아서 기른 한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인 반면, 부모의 뜻대로 할 수도 없고, 따라오지도 않는 돈 먹는 하마 같은 원수덩어리, 자식은 그런 이중적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자식'이라는 말은 단순히 부모가 낳아 기른 아이를 이를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놈의 자식 예쁘기도 하지."라고 말할 때처럼 귀여운 경우에도 사용되고, "야, 이 자식아!"라고 말할 때처럼 욕으로도 사용된다. 왜 의미나 느낌이 상반된 말에 같은 말을 쓰는지는 부모가 되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식과 거의 비슷하게 사용되지만 어감은 좀 더 다른 말에는 '새끼'가 있다. 새끼는 자식이 어릴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금쪽같은 내 새끼'처럼 '자식'보다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표현할 때 쓴다. 새끼는 더 귀여운 반면, 욕으로 사용할 때는 자식이라는 말보다 욕의 강도가 훨씬 강하다. 그래서 글로 쓸 때는 차마 "이 새끼야!"라고 할 수 없어서 '××'로 대체하기도 한다.
올해 우리집 큰딸이 입시를 치르면서 몇 년은 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대학을 갈 때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부담이 직접 공부를 해야 하고, 입시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열아홉 살 아이에게는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압박과 부담이 있었지만 나도 부모 욕심을 조금 줄이고, 아이도 부모 마음을 이해하려 하면서 예전보다 사이가 더 나아진 면도 있다. 자식 농사는 욕심이 들어가면 욕할 때 쓰는 자식을 만들어내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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