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청마 유치환은 '깃발'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렸다. 청마의 깃발은 소리가 없는 아우성이어서 더 울림이 크다. 청마는 간파했다. 인간은 이상향에 대한 간절한 동경을 품고 있지만, 갈 수 없는 근원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것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역설한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은 이데아계와 감각계에 동시적으로 관여하는 중간자"라고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수학자인 파스칼도 유명한 명상록 '팡세'에서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자"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념과 제도를 내세워도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보면 그렇다. 천사도 짐승도 아닌 내 스스로를 들여다봐도 그렇다.
우리 국민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보다는 이상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에 기우는 경향이 짙다. 시위와 집회로 지새우는 어제와 오늘이 그 방증이다. 촛불 정권의 업보 때문인가,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올해 들어 각종 집회와 시위가 그전보다 57%나 급증했다고 한다. 경찰청은 올 한 해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가 6만7천 건을 넘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중에서 약 10%가 민주노총의 집회라고 한다. 모든 분야에서 모든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시·공간도 가리지 않는다. 법과 질서의 개념은 도외시한 지 오래다. 각자의 목소리가 극과 극을 이루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방불케 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는 민주정치가 아니라, 저마다의 악다구니가 소음으로 증폭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가 횡행하고 있다. 외국 언론은 한국을 '시위 공화국' '아우성의 나라'라고 비꼰다. 평범한 일상조차 보장받지 못하니 '이게 나라냐'는 자조적 통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차라리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목소리들이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얼마나 더 투쟁하고 얼마나 더 쟁취해야 직성이 풀릴까. 이러다가 '깃발'마저 부러질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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