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하빈의 시와 함께] 겨울 입암  / 김상환(1957~ )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상주작가

겨울 입암에 갔다

어제 같이 내린 대설로

발이 빠졌다


우리는 한참이나 서서

오래된 서원과 나무를 이야기했다


마을로 가는 길

그 길은 좁고 적막하여 잔기침을 했다


토담벽 너머 화들짝 놀란

산수유 열매가 눈 속에 한껏 붉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


퀭하니 비어 있는 마을을

서둘러 빠져 나오니

까치까치 설날이 이레 남았다

―웹 사이트 '시사랑, 시의 백과사전' (2003)

* * *

장하빈 시인·문학의 집
장하빈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상주작가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의 겨울 풍경을 담았다. '입암'(立巖)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것은 마을 가까이 흐르는 가사천변에 선바위가 있어서다. 시인은 눈 속에 발을 빠트리며 왜 입암에 갔을까? 그곳에는 조선 중기 낙중학(洛中學)을 대표하는 여헌 장현광(1554~1637)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입암서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일행들과 그곳에 오래 서성이며 유서 깊은 입암서원과 향나무의 숨결과 체취를 느껴보았던 것!

행여, 여헌 선생의 후손을 만날 수 있을까? 송림 울창한 언덕을 내려와 "좁고 적막하여 잔기침을 하"는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는데, "눈 속에 한껏 붉은" 산수유 열매와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여러 차례 관직을 뿌리치고 평생 도학자의 길을 걸어온 선생의 절조를 말해 주는 듯하다. '까치설' '아치설'로 일컬어지는 작은설이 한 며칠 남았는가? 저 선바위처럼 눈밭에 꼿꼿이 선 채로 세모(歲暮)를 보내는구나! 한 해 동안 '장하빈의 시와 함께'를 사랑해 주신 독자 제현께 감사드린다. 시로써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기를….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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