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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보이지 않는 살인마

채원영 사회부 기자
채원영 사회부 기자

지난 10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 해 700만 명이 대기오염 때문에 조기 사망하고,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400만 명이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이 대기오염을 '보이지 않는 살인마'(invisible killer)로 규정한 이유다.

최근 입수한 '도시 및 산단 지역 유해 대기오염물질 모니터링' 보고서는 대구 공기도 살인마로 변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300쪽에 달하는 보고서에는 대구 대기 중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2군 발암물질이 늘 떠다니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같은 발암물질은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과 인천, 창원 등 국내 주요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파악됐지만 해답은 마땅치 않았다. 일부 물질을 제외하면 마땅한 관리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환경보전법은 저농도에서 장시간 노출될 경우 건강에 직간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물질 35종을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그보다 위해성이 덜한 물질까지 포함해도 관리 대상인 대기오염물질은 64종에 불과하다. 실제로 발암유발물질로 지정됐는데도 관리 대상에선 빠진 물질이 부지기수였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환경부는 1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등 8개 특정대기유해물질에 대한 배출허용기준 신설을 입법 예고했다. 일반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 등 10종에 대해 배출허용 기준을 30% 강화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배출구나 정화시설을 거치지 않고 퍼져 나가는 비산(飛散) 오염원은 사실상 관리 대책이 전무했다. 그마저도 대기환경기준이라도 있는 물질은 벤젠과 납 두 종류뿐이다. 대구시가 내놓은 대책도 배출구가 특정되는 사업장에 대한 배출허용기준만 확대, 강화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대구의 우선 관리 물질로 파악한 6가 크롬과 비소 등은 별다른 기준 강화나 대기환경기준이 여전히 없다.

대기 중 발암물질을 바라보는 대구시의 시각도 아쉬웠다. 관련 공무원들은 "발암물질은 어느 도시를 가도 다 똑같다"거나 "당장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대꾸했다. 대구 취수원 이전이나 성서 바이오SRF열병합발전소 건립 문제 등 시민 여론이 들끓는 환경 이슈가 아니면 그저 '별일 아닌 일'이 돼버리는 것이다.

대기오염물질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건 현장 근로자들이다. 따라서 대기오염 여부는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직결된다. 그러나 지역 노동단체의 움직임은 미미했다. 매일신문 보도 이후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경상남도와 창원시에 화학물질안전관리위원회의 운영과 기술·행정 지원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대기 중 발암물질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구시의 대책 마련과 노동단체의 인식 개선 외에도 개별 사업장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사업장에서 유해물질 배출을 줄이려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각 산업단지들은 자발적인 저감 대책을 마련하고 현장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살인마에게 미래와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건 대구 시민 모두다. 대기 중 발암물질 문제는 특정 기관이나 단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 사회가 모두 힘을 합쳐 책임감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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