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의 1859년 '종의 기원'을 시작으로,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물의 행동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원칙에서 시작한다"고 설파했다. 도킨스에 앞서 '적자생존'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이도 있었다. '생물학의 원리'(1864)라는 책을 쓴 허버트 스펜서다. 그는 '적자생존' 이론을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과학, 특히 경제 이론에 접목시켰다.
동물의 진화를 설명한 이들의 과학 이론은 경제 논리에도 상당 부분 '이용'됐다. 이들이 원한 바는 아니었을 테지만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에 생물학적 이론이 자주 동원되는 탓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고 이겨야 하는 것이 당연한 원리고,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극단적 이기심에 일종의 면죄부마저 제공한다.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만들어낸 '돈'은 사람을 배신했다. 급기야는 돈을 위해 사람이 죽는 처연한 풍경이 일상화했다. 올 한 해 읽은 수많은 기사 중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하게 만든 표현이 있었다. 바로 '사람을 갈아 넣는'이라는 수식어였다. 저임금과 위험한 노동현장에 사람을 혹사시키는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드러내는 적나라한 표현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2인 1조의 근무 원칙을 지키지 않고 혼자 근무하다 참변을 당한 비정규직 김용균 씨 사건은 돈의 논리에 사람의 목숨이 희생당한 대표적 사례다. 이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사람을 희생시켜 돈을 버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국내 음식 배달시장은 피 튀기는 전쟁터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음식업 배달원의 산재 사고 사상자 규모는 8천447명에 달하며, 사망자는 164명이다. 이마저도 배달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당일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배송시장도 '사람을 갈아 넣는' 대표적 업종 중 하나이고, 밤샘 노동이 기본이지만 정당한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게임산업, 기술교육 등을 명목으로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며 혹사당하기 일쑤인 미용업계, 여전히 '태움'을 강요하면서 살인적인 업무와 열악한 처우를 감당해 내고 있는 간호사 문제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사람을 희생시켜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악한 경쟁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인류 문화의 발전을 이끌어온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이타적인 협력 행위라는 사실이다. 혼자만 살아남겠다고 무한경쟁만 벌였다면 이미 오래전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을까. 최근 '수축사회'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사회경제 현실을 진단한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은 "자크 아탈리 등 석학들이 주장하는 지구촌 차원에서의 공생과 이타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수축사회 해결의 유일무이한 방안"이라고 진단했다.
며칠 전 본 영화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포스트지의 사주였던 캐서린의 남편은 신문을 두고 '역사의 초고'라고 했다. 2019년에는 제발 역사의 초고인 신문 지면에 더 이상 돈을 위해 '사람을 갈아 넣는' 기사가 쓰여지지 않고 '공존'의 사례가 가득 기록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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