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도…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文대통령에 대한 평가 급전직하

'소통' 아이콘서 '고집' 상징으로

디지털시대 사공 많은 우리나라

힘 합쳐 노 저을 수 있는 새해를

몇 년 전 나름의 노후 대책(?)을 마련한 게 있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입니다. 퇴직 후 강의 경험도 살리면서 봉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아직 본격적인 교습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외국인 대상 우리말 교육에서 느끼는 애로와 보람 등은 들을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속담을 가르칠 때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속담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뜻을 설명하는 것은 더 난제입니다. 말은 알아들어도 배경 지식 없이 그 속뜻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지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 무슨 뜻인지 우리는 다 압니다. '어떤 행동을 당장 해치우지 못하여 안달하는 조급한 성질을 이르는 말'이라거나 '행동이 매우 민첩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서 설명하고 있군요.

외국인들에게도 말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뭘 뜻하는지 물어보면 난감해 합니다. 한참 생각하다 이런 답을 내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죽으려고 별짓을 다한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우리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주관하는 사람이 없이 여러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자기주장만 하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 사공이 노 젓는 사람이라는 걸 설명해 주어도 금방 그 뜻을 이해하는 외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런 대답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노를 저으면 바다로 가야 할 배가 산으로 가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생각일까요?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뜻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면 될 일도 안 된다? 그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게 더 좋은 의미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공감 가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워낙 말들이 많아진 주변을 돌아보며 의식적으로 그렇게 관점을 바꾸어 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는 것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입니다.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급전직하는 너무 뜻밖입니다.

포용과 소통의 아이콘에서 불통과 고집의 상징이란 평가로 바뀌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혹평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경제는 물론이요, 장기로 여겨지던 남북관계도 부정 평가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안타깝습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문 대통령만은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말로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성향 여부를 떠나 많은 국민이 그런 기대를 했던 게 사실 아니겠습니까.

사실 중구난방은 민주주의의 특징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주권자인 국민이 자기 할 말을 하겠다는 데 누가 막겠습니까. 디지털 시대를 맞아 목소리를 크게 증폭시킬 수 있는 수단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공이 많은 것이지요. 그만큼 어려운 게 민주주의입니다. 자칫하면 바다로 가야 할 배가 산으로 가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걸 낭패라 생각하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제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니 불가능한 일이 없더라는 쪽으로 생각합시다. 수많은 목소리가 결국 화음을 이루도록 하는 게 지도자들의 지휘 역량입니다. 소리가 음정을 너무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민 각자의 몫이겠고요.

새해에는 모쪼록 사공들이 즐거이 힘을 합쳐 노를 저을 수 있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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