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스크럽스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Scrub. 사전적인 의미는 '박박 문지르다.'라는 뜻이다. 의사들이 수술 전 손을 씻을 때, 비눗물 사용은 물론 솔로 박박 문질러 손을 씻는다는 뜻에서 출발하여, 수술 집도의를 도와주는 행위로 의미가 확산되었다가, 복수형으로 수술 시 입는 옷을 말한다. 청색 혹은 녹색계열의 옷이고 수술복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꼭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진료실, 검사실, 병실 등에서 착용하고 있으므로 수술복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수술실 안에서만 착용하는 1회 착용 후 세탁을 거쳐 재활용하는 수술복이 따로 있다. 병원 근무복은 전통의 흰가운을 포함하기에 이 글에서는 스크럽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미국의 병원드라마인 '그래이 아나토미'나 '스크럽스'에서 주로 젊은 의료진이 스크럽스에 청진기를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한국에서 이 스크럽스가 확산된 계기는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을 막기 위해 넥타이 및 소매 있는 긴 옷을 착용을 가급적 멀리하는 방향으로 지침이 바뀌고 난 이후부터이다.

보건복지부는 환자안전법에 따라 스크럽스 형태의 근무복으로 의료기관 외부 출입을 자제하는 것을 포함한 감염 예방을 권고안을 마련하였다. 이 안의 초안은 2년 전인 감염관리를 위한 의료기관 복장 권고문의 형태로 배포했고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초안은 수술복 형태의 반팔 근무복을 강제하는 안이 있었고, 한때 국회에서 의사 근무복 착용 상태로 외출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상정되어 의사와 정부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개정안은 감염예방을 위한 적절한 복장으로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였고, 외출 자제를 권고하는 선에서 표현상의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는 의료진이 스크럽스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너무 흔하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식료품 가게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간호사나, 레지던트와 같은 젊은 의료진들이 주로 스크럽스에 운동화를 신고 출퇴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도 스크럽스를 입고 출퇴근하거나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쟁이 있다. 수술 시 입던 스크럽스를 갈아입지 않고 병실 회진은 돌아다니는 것, 병원내에서 입던 스크럽스를 갈아입지 않고 집으로 퇴근하는 것, 쇼핑센터나 파티 등 대중 앞에 나타나기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논쟁과 연구가 있었다. 스크럽스와 병원 감염의 확산의 연관성에 대한 확정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다. 따라서 스크럽스를 입고 외부 출입을 하는 것이 금지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스크럽스 혁명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패션화·산업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노동 인구의 10%정도가 의료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의료 패션 산업의 매출은 10조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환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는 의료 산업 종사자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복장의 편의성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의료기관 근무자임을 과시하는 심리도 포함되어 있다. 일률적인 제복의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와 색깔을 가진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스크럽스를 파는 매장이 쇼핑몰 한자리를 차지하고, 의과대학생은 자기가 구입한 스크럽스를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 의사로 분한 여배우도 스크럽스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러나 환자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시행한 연구에서 조사에서 환자들은 흰 셔츠에 넥타이, 그리고 흰 전통적 가운을 입은 의사를 가장 신뢰한다고 대답하였다. 스크럽스만 입거나 청바지와 같은 캐주얼에 흰 가운을 입을 경우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대답하였다. 감염에 대한 걱정 보다는 심리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서는 오히려 셔츠, 넥타이, 흰 가운 조합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복장 문화는 나라마다 상황 마다 다르다. 한국에선 스크럽스를 입고 출퇴근 하다가는 구설수에 오를 수 있고, 아무도 병원에서 신던 신을 신고 집안을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본질은 병원 감염을 줄이는 것이다. 손씻기를 습관화하고, 병원 내 탈의 시설을 확충하고 스크럽스를 많이 제공하여 자주 옷을 갈아 입도록 하고, 환자와 접촉이 있었던 옷은 집의 세탁기 보다는 병원 내의 세탁소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공통된 제안이다.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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