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고 그 음악의 메시지, 즉 가사로 인해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된다. 과연 어떻게 음악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을까. 사실 이러한 선례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 한 곡만을 연속으로 듣는 기질이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간혹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성인이 된 우리는 음악을 그렇게 깊이있게 듣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에게는 음악이 우리의 인생에 얼마만큼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작곡가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대를 생각해보자. 18세기 고전음악 시대의 이야기다. 라디오도 없던 시기라 음악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지금과는 달리, 길을 걷는다고 해서 음악을 접할 수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마차를 타고, 아주 먼 길을 가야 할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음악은 적극적인 감상자들의 노력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1개의 악장은 10분 정도가 되고, 한 곡은 보통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패스트푸드처럼 음악도 즉흥적이고, 빨리 좋은 가사와 음을 전달해줘야 한다. 대중가요 즉, 팝(Pop) 음악계에서 내려오는 말이 있다. "3분이라는 시간동안 귀 기울일 만큼 현대인은 그렇게 한가하지 못하다." 지금은 음악의 질 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이런 흐름은 장점도 있겠지만, 아주 심각하고 지독한 문화적 퇴행을 가져온 측면도 없지 않다.
지금은 온갖 압축방식으로 음악파일이 너무나 쉽게 공유되고 운반된다. 전화기 안에는 결코 플레이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많은 음악파일들이 저장되어 있고, 이제는 음악을 골라서 플레이하지도 않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나오는 음악들을 랜덤으로 듣게 된다. 마치 라디오처럼. 너무 흔해진 것이 음악이고, 또한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음악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바하의 음악에서 숨막힐 듯한 감동을 느껴보지 못했고, 베토벤 음악이 전해주는 인간적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드뷔시의 그 영롱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도 않는다. 존 케이지의 새로운 음악에서 깜짝 놀라지도, 충격을 받지도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 하루, 음악 한곡을 선택해서 완벽하게 음악과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건 어떨까. 가사가 있는 음악이면 그 가사를 음미하면서, 연주곡이면 그 소리가 이끄는 저 먼 상상의 나라로 눈을 감고 여행을 떠나자. 과연 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가는, 우리가 얼마나 음악을 깊이있게 감상하려 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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