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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대통령의 책임회피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17년 혁명 후 소련의 경제 혼란은 극심했다. 계급 청소로 기존 '부르주아 전문가'들이 쫓겨나면서 어중이떠중이들이 국영기업과 공장 관리자가 됐다. 생산량이 줄고 비용은 증가하는 등 경영이 극도의 비효율로 치닫는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사회주의에 대한 인민들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스탈린이 꺼내 든 카드는 배신자들의 '사보타주'나 '손괴행위'였다. 소련의 붕괴를 바라는 내부 배신자들이 고의로 작업을 지연시키거나 산업시설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소련 경제를 마비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만이 정책 실패를 은폐하면서 경제 혼란의 원인을 꾸며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런 시나리오에 따른 첫 공개재판이 1928년 '샤흐티 재판'이다. 1937~1938년 사이 3차례에 걸친 본격적인 숙청 재판에 앞서 열렸다고 해서 역사가들은 '예열(豫熱) 재판'이라고도 하는데 캅카스 북부 탄광 도시 샤흐티가 그 무대다. 당시 샤흐티 탄광에는 수십 명의 국내외 기술자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석탄 생산량이 줄자 소련은 53명의 기술자를 기소해 5명을 총살하고 44명은 감옥으로 보냈다. 죄목은 기술자들이 혁명 이전의 광산 소유주들과 공모해 소련 경제의 사보타주를 기도했다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2년 뒤에 열린 '산업당 재판'(Industrial Party)도 똑같은 시나리오에 의한 희생양 만들기다. 소련 검찰이 제기한 혐의는 소련 내에 당원이 2천 명에 이르는 '산업당'이란 지하 정당이 존재하며, 이들은 프랑스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아 파리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반소 러시아인들과 함께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당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강조했다. 경제정책의 성과가 나왔는데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 지난해 말의 '언론 탓'의 연장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성과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성과 자체가 없다. 그 이유는 잘못된 정책이지 언론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가짜뉴스' 프레임은 정책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저급한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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