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A. I.'에는 인간의 감성을 지니고 인간 모습을 한 어린아이 로봇이 등장한다. 이 어린아이 로봇은 마음을 잃어버린 이기적인 인간들 틈에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도대체 인간과 로봇 간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보편적이 되어 버린 용어 '로봇'과 '안드로이드(인조인간)'의 개념이 소설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0년이다. 체코슬로바키아 소설가 카렐 차페크가 희곡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1920)에서 인조인간을 등장시켜 그들을 '로봇'이라고 명명한 것이 그 시작이다.
카렐 차페크가 만든 신조어 '로봇, Robot'은 '부역(賦役)'을 의미하는 체코어 'Robota'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용어에서 나타나듯 희곡 'R.U.R'은 노동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대량생산되는 미래 사회를 무대로 전개된다. 이후 노동 해방과 경제적 이윤추구를 위해 인간이 대량생산한 로봇이 결국에는 인간을 말살하는 비극적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출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들의 오만함 등, 미래 사회의 문제점이 예측되고 있다. 카렐 차페크의 'R.U.R'은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에서는 1923년 '인조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다. '인조인간'이라는 신조어가 일본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때이다.
일본어 번역을 기반으로 박영희가 '인조노동자'(1925)라는 제목으로 'R.U.R'을 조선에 번역, 소개한다. 이 시기 서구문학 번역이 대부분 축약되어 소개된 것과 달리 '인조노동자'는 4막으로 이루어진 원문 그대로 번역하되, 용어는 조선상황에 합당한 것으로 바꾸고 있다. 단 제목에 '노동자'라는 용어를 추가한다. 제목 덕분에 SF와 사회소설이 결합된 'R.U.R'은 조선으로 이입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문제를 다룬 사회소설의 이미지를 보다 강하게 지니게 된다.
1920년대는 일제의 경제침탈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수많은 조선인이 개나리봇짐을 지고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미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력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근대 과학의 발전이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은 조선에서 인조인간이란 야담 속 귀신이나 괴물, 혹은 요괴와 차별화 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 점에서 '노동자'라는 용어를 제목에 내세워 표면상으로라도 과학소설로서의 이미지를 가능한 한 지워버린 번역자 박영희의 안목은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멀지 않은 시기 기계가 번역을 담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 예측은 번역의 역동적인 과정을 간과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은 문화의 적용과 변용의 과정이다. 타문화와 자국 문화의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언어 번역의 과정에서 적용하는 것,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역이 아닐까.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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