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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승민이라면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8년 4월 총선으로 4당 체제가 되면서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제3당의 당수로 추락한 김영삼 앞에 놓인 선택은 대통령 꿈을 접든지,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꾸든가 둘 중 하나뿐이었다. 결국 김영삼은 1990년 3당(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합당을 결행한다. 김영삼은 '반호남 지역연합'이라는 퇴행적 지역 구도를 가동해 대선 후보가 되고, 마침내 대통령에 오른다.

김영삼은 '보수 야합'이라고 격렬한 비판을 받은 합당의 명분으로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것'이라고 응수했다. 1995년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보란 듯 군사정권 시절 부정 축재한 군부 출신 정치인을 솎아내고, 전두환 정권을 탄생시킨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했다. 또 금융실명제로 경제 시스템을 크게 바꿔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요즘 신세가 제3당의 당수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처지와 비슷하다. 유 의원을 굳이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로 부른 것은 그가 언젠가 다시 한 번 보수우파의 '혁신 기수'로 역할을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 의원도 명분만 만들어지면 한국당에 입당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유 의원은 대구경북(TK)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다. 콘텐츠와 정치적 신념만 보자면 갈 길 잃은 TK 정치권에서 유 의원을 넘어설 정치인은 없다. 그러나 유 의원은 정치인의 핵심 덕목인 소통 능력과 타이밍 감각에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또 큰 리더가 되려면 '결단'도 중요한 자질이다. 이 부분에서 유 의원은 아직도 많은 담금질이 필요하고 자기와의 싸움을 처절하게 벌여야만 한다.

현재 유 의원은 고립무원의 처지다. 함께 보수를 바꿔 보자며 도원결의를 했던 동지들이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나 한국당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당은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조만간 입당 후 당권 도전에 나선다는 후문이다. 황 전 총리의 한국당 입당은 양날의 칼이다. 박근혜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막판에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한 그의 입당은 일정 부분 보수 결집과 전당대회 흥행 효과는 있겠지만 보수의 외연 확장과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다.

이 대목에서 그토록 보수 혁신을 외쳤던 유 의원의 심중이 궁금하다. 명분은 만드는 것이다. 궤변이라도 좋으니 스스로 명분을 제시하고 보수의 본 진영으로 들어가 싸워라. 설령 무릎 꿇고 들어갈지언정 부끄러움도, 소신 없음도 아니다. 적어도 보수 혁신의 꿈과 대의를 간직하고 있다면 말이다.

결단의 시점이 왔다. 더 이상 머뭇거리는 것은 정치적 직무 유기요, 유 의원이 혐오하는 비겁함이요,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 민심의 바다에 몸을 던져라. 그래야 유 의원도 살고, 한국 보수도 국민을 위한 정치로 되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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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저의 '每日칼럼'에 성원과 질책을 아낌없이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사 이동으로 동부지역본부장을 맡게 돼 다른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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