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겹사돈은 어색하다. 외국인 자매를 며느리로 맞이한 겹사돈 가정이 있다. 시어머니 김곡지(65) 씨는 자매를 며느리로 두면 장점이 훨씬 많다고 말한다. 첫째 아들이 외국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는 팔을 걷어붙이고 말렸지만 맏며느리에 푹 빠져 둘째 아들에겐 국제결혼을 권유했다. 이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억척스러운 첫째 딸에서 맏며느리로
"가족이 되기 전에는 우리 며느리의 진가를 못 알아본 거지요." 15년 전 김곡지 씨는 아들이 반려자로 소개한 여자를 보고 기함을 했다. 아들의 회사 동료였던 라진숙(49)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산업연수생이었는데 아들보다는 일곱 살이나 많았다. 결혼을 반대하는 건 진숙 씨 가족도 마찬가지였는데 결국 두 사람은 혼인 신고를 마치고 양가에 통보한 후에야 결혼 승낙을 받았다. 결혼 후에는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진숙 씨가 임신을 하면서 타지에서 일하던 남편과 떨어져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 김 씨는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누구보다 검소하고 생활력 강한 며느리가 마음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며느리에게서 배울 점도 많이 발견했다. 진숙 씨는 전기가 고장 나면 배선을 점검해 고치고, 업자에게 맡기자고 해도 전문가 수준으로 40평 집안 도배를 직접 했다. 김 씨는 며느리가 어쩌면 이렇게 억척스러울까 궁금해하던 중 진숙 씨의 파란만장한 과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진숙 씨는 8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는데 6명의 동생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공사장에서 벽돌을 날라 붙이는 일부터 물건을 파는 일, 공장 기술직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자연스레 검소함과 성실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진숙 씨는 통신비를 줄이려 지금도 2G폰을 사용 중이다.
김 씨는 무엇보다 진숙 씨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점도 좋았다.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다. 출산 후 진숙 씨는 일을 시작했는데 근속 기념으로 받은 금 3돈을 시어머니께 선물로 드렸다. 외국에서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만국 공통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김 씨는 아들이 진숙 씨를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라 소개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김 씨는 둘째 아들에게도 맏며느리 같은 색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며느리와의 조우는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다.

◆언니와 동생이 시누-동서가 되다
둘째 며느리 아셈 씨는 2015년 한국에 왔다. 언니 진숙 씨를 위해 집안 일을 돕던 시어머니가 허리 수술을 하면서 일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셈 씨는 초등학생 조카를 돌보는 일을 맡았다. 당시 대학원을 갓 졸업한 아셈 씨는 언니에게 도움이 필요하단 얘기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셈 씨는 진숙 씨가 자신을 딸처럼 보살피며 키운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6개월간 조카를 내 자식처럼 챙겼고 이 모습을 지금의 시어머니가 지켜보았다.
아셈 씨는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한 김 씨의 병간호도 맡았다. 김 씨는 첫째 며느리는 대장부 같아 믿음직스러웠는데 아셈 씨는 차분한 성격이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김 씨는 아셈 씨가 귀국하기 전 꼭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셈, 우리 집 며느리가 되어 줄래?" 김 씨는 우애가 좋은 두 아들이 화목한 자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겹사돈 문화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주변 눈치를 보는 것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했다.
평소 시동생의 자상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진숙 씨도 동생을 맡겨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 맏딸을 외국으로 시집보낼 때는 걱정이 많았던 진숙 씨 부모님도 이번에는 반대하지 않아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자매 며느리의 장점
김곡지 씨는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함께 생활하기 전에는 진숙 씨가 왜 그토록 억척스레 일하겠다고 고집부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며느리의 사연을 안 뒤 일하는 진숙 씨를 대신해 집안 일을 맡았지만 40대 앓았던 허리통증이 재발해 수술까지 해야 했다. 진숙 씨의 출산 과정도 순조롭지 못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첫째를 갖기까지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임신할 때마다 목숨에 위협이 될 정도로 쇠약해져 3번이나 유산을 했다. 출산 후에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출산 당일에는 시력을 완전히 잃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호사다마라고 말한다. "힘든 일도 함께하면서 가족 간에 더 끈끈해지는 게 아니겠어요? 첫째는 항상 너무 기특하고, 내가 잠깐 아팠던 덕분에 둘째랑 인연이 되었잖아요."
어렵게 얻은 두 며느리는 김 씨에게 복덩이다. 화목한 두 가정이 만나 두 배로 행복해졌다. 김 씨는 자매를 며느리로 맞아 생기는 장점이 많다고 한다. 사실 같은 며느리지만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진숙 씨보다는 둘째 며느리에게 더 신경이 쓰이고 도울 일도 많다. 진숙 씨와 아셈 씨는 사이좋은 자매이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사랑이 어느 쪽으로 향하든 시샘하는 일이 없다. 동서 간의 갈등이 없으니 김 씨는 어른 노릇을 하기도 편하다고 한다.
◆3층 집에서 다 같이 살아요!
진숙 씨가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온 이유는 고향에 집 지을 돈을 벌기 위해서다. 3년간 일하면서 고향에 집도 짓고 번듯한 살림살이도 갖추어 놓았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남편을 만났고 고향의 새집 대신에 대구에 정착하게 되었다. 진숙 씨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시부모님과 시동생 내외까지 세 가정이 함께 살 집을 짓는 것이다. 진숙 씨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다. "저는 대가족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함께 사는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를 위해 수고해주시는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동생 내외가 다 같이 살면 집 안에 즐거운 일이 더 많아질 거예요. 마음 같아선 아이도 더 낳고 싶은데 제가 70년생이거든요. 그것보다는 3대가 대가족을 이뤄 사는 것이 조금 더 현실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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