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던 개가 심하게 다쳤다. 한쪽 갈비뼈가 모두 부러진걸 보니 누군가 발로 찼나 보다. 그런데 개는 그냥 가만히 누웠을 뿐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평소에도 몸이 아프면 먹는 것도 중지하고 가만히 견디던 것을 보았던지라 그런 줄 알았다. 아프다고 하지 않으니 아픈 줄도 몰랐다. 오랜 시간이 가도 일어서지를 않아 병원에 가보니 그제서야 아픈 몸이 드러났다.
그러고도 개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부르면 눈만 떠 볼뿐 더 이상의 아픈 표시는 내지 않았다. 야생의 짐승은 아프면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아픈 표시를 내지 않는다는데 아마도 야생의 습성이 있어서 통증을 가만히 견디는 모양이었다. 몇 번 동물들 스스로의 치유 능력을 본지라 이번에도 스스로 치유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아픈 개를 돌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조그마한 상처가 있어도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주변에서 내 아픔을 알아주기를 바라던 것을 생각하니 한갓 저 짐승보다 더 못했구나 싶다. 사람은 말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아픔도 말한다고 하겠지만 개는 말까지는 못해도 신음소리까지야 못 내겠는가. 그렇게 상처를 치유한 개는 자기를 아프게 한 대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회피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를 아프게 한 대상을 그만큼 회피하지는 않는다. 용서와 화해라는 이름으로 다시 어울리고 그것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사람들과 상처를 견디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로 아픔을 표시해야 하는지, 짐승처럼 아예 가만히 견디는 것이 나은지에 대해서였다. 대체적인 결론은 아픔은 표시하되 너무 심하지는 않게였다. 결국 중도를 찾자는 것이다. 아픔을 표시하자는 것은 그럼으로써 내 아픔을 타인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인데 짐승은 자신의 아픔을 다른 짐승이 알아주기보다 몰라주기를 원한다. 살기 위해서이다. 가만히 웅크리고 누운 개를 보면서 그 치열한 고통의 견딤에 자꾸 마음이 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사람을 더 만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점점 회피하게 되는데 아마도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짐승의 생존방식과 사람의 생존방식이 무어 그리 크게 다를까 싶기도 하고, 어느 것이 더 나은 방식이라고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를 대하는 방식에서 오히려 짐승에게서 배운다. 천영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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