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춘향인 줄 알고 뽑았더니 알고 보니 향단이였다"고 언급하며 박 전 대통령을 혹독하게 몰아세웠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그가 이달 말 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에 나서면서 친박(親朴)의 면모를 확연히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가장 강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삼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지난 6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야 한다는 국민 의견이 적지 않다"고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7일 당대표 출마 선언에서 "박 전 대통령을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치인 박근혜를 극복해야 한다"고 발언,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기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은 출마선언문에서 박근혜라는 이름을 무려 9번이나 얘기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파면된 대통령. 그리고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수감돼 있는 형사재판 피고인. 정치적 파멸 상태에 빠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유한국당 새 지도부를 뽑는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부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선권에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당권 주자들의 입에 '박근혜'라는 이름이 일제히 내걸리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당권 주자들이 박 전 대통령을 내세우는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이 갖는 정치적 위상이 한국당 내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7년 7·3 전당대회 당시 16만여 명이었던 책임당원은 현재 34만여 명으로 배 이상으로 늘었다. 당대표 선거는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30%)를 제외하면 대부분 책임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가 70%의 비중을 차지, 당락을 좌우한다.
그런데 당에 충성도가 높은 책임당원들 사이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여전히 크다는 게 당 내부의 분석이다. 더욱이 책임당원의 대다수, 또 투표에 직접 참여할 '열혈 책임당원들'의 대다수가 대구경북(TK)에 있어 박 전 대통령을 내세우지 않고는 득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후보들의 판단이다.
때문에 2017년 당대표 시절 '박근혜 제명' 조치로 박 전 대통령을 강제 출당시켰던 홍준표 전 대표조차 박근혜 석방 운동까지 들고나오며 친박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기 추락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이 박근혜를 다시 불러냈다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한국당을 국정농단 세력이라는 프레임에서 서서히 탈피시키고 있고, 박 전 대통령에게 씌워진 굴레도 벗겨내고 있다는 것이다.
◆박풍을 바라보는 시각과 전망
탄핵 과정에서부터 일관되게 박 전 대통령 곁에 서 있었던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돌이켜보면 국민들이 탄핵정국에서 가짜뉴스에 휩쓸린 경향이 짙다.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했던 안보가 불안해지고 경기가 추락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추경호 한국당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애통함을 표시하는 사람들을 예전부터 꾸준히 만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잇따른 권력형 부조리들이 드러나면서 현 정부에 대한 비판 확장 차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가 너무 혹독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TK정치권이 미래를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석호 한국당 의원은 "구속 수감된 기간이 2년 가까이 됐다. 이후 재판은 불구속 상태로 가는 게 좋다.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보수가 단합해 미래지향적으로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장석춘 한국당 의원도 "구속·수감이 계속되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그러나 TK는 '포스트 박근혜'를 고민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현실정치로 돌아올 수 없다. TK가 전직 대통령에게 예우하되 새로운 인물을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찬(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근혜 바람은 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원들의 표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 동원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유신(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성과를 보이지 않는 데다 경제도 어려워지다 보니 불만이 제기되고 박 전 대통령의 부활 기미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듯하다"며 "하지만 과연 부활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회의적이다. TK를 넘어 전국적 현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아직 전국적 바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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