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설 명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집안 어른들의 얘기다. 흔히 '설'이라면 음력 정월 초하루를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24절기(節氣)로 따져 초승에서 보름(음력 1월 15일)까지 내내 설 명절이라는 것이다. 이 기간 제기차기, 윷놀이, 지신밟기 등 각종 민속놀이를 즐기다 보름을 맞이하면 오곡밥에 부럼을 먹고 액땜을 한다. 그리고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맞이로 새해의 소원성취를 비는 것이 설 명절의 대미(大尾)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유의 민속놀이는 대부분 사라지고 이젠 육갑(六甲)을 짚고 운세풀이 하는 토정비결만 전한다. 한 해의 운세풀이는 예부터 민초들이 즐겨온 세시풍속 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설날 차례상 앞에서 나누는 덕담도 으레 토정비결이 화두가 된다고 했다. 조선조 중엽의 학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䓿․1517~1578)이 지은 예언서로 길흉화복을 점쳐온 신수풀이를 말한다. 새해가 밝으면 으레 토정비결의 신통력을 믿고 한 해를 점치며 살아갈 만큼 우리 삶의 도참(圖讖)으로 정착돼 왔다.
우리 국민의 93.5%가 토정비결을 본다는 반세기 전(1969년) 정부의 표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DNA(유전자)에 기복(祈福)문화가 깊숙이 스며 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엔 새마을운동이 확산되면서 토정비결이 한때 민심을 현혹하는 샤머니즘으로 매도되기도 했으나 2000년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자 누구나 손쉽게 검색에 들어가 토정비결을 즐겨 보고 있다.
올해엔 각 이동통신사와 금융기관에서도 새해 이벤트로 토정비결 온라인을 개설해 고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유명 역술인들의 주역풀이 결과 올해 우리나라 국운엔 어두움이 깔려 있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운세 역시 정책수행의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쩌면 끊임없이 수난의 역사를 겪어온 한국인 특유의 징크스에서 비롯된 역술풀이인지도 모른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한국 점술시장 규모가 연간 37억 달러(약 4조원)에 이르고 역술인만도 줄잡아 30만 명 이상이라며 한국의 샤머니즘 경제학을 보도한 일도 있다. 국내 각 일간지에서도 '오늘의 운세'란을 개설해 매일 지면을 할애할 만큼 한국의 유별난 운세 경제학에 외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