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봄이 온다

각정스님 청련암 암주

각정 스님 청련암 암주
각정 스님 청련암 암주

눈 오는 날 호출되었다.

입춘 즈음 내리는 춘설은 봄을 부풀게 하였다. 바람이 흔드는 풍경 울림에 목 너머 서어나무가 무사한지 궁금해졌다. 산문을 열고 나가면 산길은 서어나무 숲과 이어진다. 언덕 위에는 수백 년 풍상을 견디며 고행자의 풍모를 지닌 거목이 정정하게 서 있다. 가만히 안아본다. 올겨울에는 눈도 없었고 비가 없어서 식수가 충분하지 않았었다.

눈이 쌓이는 숲은 고독과 명상 그리고 생명과 죽음까지도 덮고 있었다.

나무는 인간이 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이다. 나무처럼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갖고 그 믿음을 끌고 갈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무의 우듬지는 바람에 굽어지고 사람은 시간에 의해서 의연해진다.

짜라투스트라는 나무를 쳐다보며 이렇게 외쳤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나무들을 괴롭히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부러지지, 이와 같이 우리 인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구부러지고 고통받는다."

고통은 신이 보내는 신호라고 한다. 나무가 바람에 굽은 것처럼 우리 인간들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단련되고 견디어진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은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이 주어지는 것은 신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흰 눈에 덮인 길은 신비롭다. 흰 세계는 꽃이나 녹음이 가질 수 없는 각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지상에 내리는 한 송이 한 송이 눈꽃은 봄을 알려오는 무한한 이야기이다. 눈,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새로운 봄의 시작을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하얀 눈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준다.

시간의 도끼는 방 안 깊숙이 햇볕을 들이고 빛바랜 일상을 소실점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눈 오는 산중은 인적이 뜸해졌다. 혼자서 방 안의 오디오를 툇마루로 옮겼다. 설 전야 대청소까지 마쳤기 때문이었다. 오디오 볼륨을 크게 올렸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언제나 작별 인사가 안녕(Gute Nacht)이라고 집 대문에 써 놓는다.

여행은 시인 뮐러가 봄꿈을 그리며 명상적인 서주로 시작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장소 보리수-그곳에서 쉴 수만 있다면 "여기서 쉬어가게" 쉴 수 없는 것이다. 나무그늘과 잎사귀들을 지나간다.

오월의 들판을 지나갔다. 여행이건, 음악이건 보고 들을 때마다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들려서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자주 반복해서 연습할 때 새로운 것이 보이고, 새로운 것이 들린다. 차실에 수선화가 꽃망울을 피우고 서곡은 수줍게 새하얀 선물을 주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한 걸음씩 가까이 와 있었다. 봄은 추위를 이기고 바람과 함께 돌아온 승리자이다.

해마다 꽃이 피면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들판에서, 땅속에서, 대기에서 봄이 오리라. 봄은 우리들을 자주 그리고 많이 웃게 한다.

창문을 열어 봄 공기를 방 안 깊숙이 채운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보다 더욱 세상을 살기 좋은 정토로 장엄하며 행복해지는 일이다.

봄은 바람과 함께 오고 있다. 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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