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민으로서 철도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최근 성주군의 최대 화두는 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 유치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성주군 곳곳에 역사 유치를 염원하는 단체·군민이 내건 현수막이 물결을 이룰 정도다.
특히 2016년 사드 성주 배치 결정에 이어 또 한 번 중차대한 역사적 현실에 직면한 성주군민은 100여 년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미래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 더 단합된 힘을 보이고 있다.
성주군과 철도의 인연은 100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히는 1901년 일제가 식민지 수탈을 본격화하기 위해 경부철도합동조약으로 경부철도 부설권을 빼앗고, 일본자본 회사인 경부철도㈜가 그해 8월 20일 서울 영등포, 같은 해 9월 21일 부산 초량에서 공사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원래 경부선 철도는 대구에서 곧바로 성주군 백천을 따라 김천으로 연결하려 했었지만, 왜관과 구미로 둘러가는 것으로 변경됐다. 백천은 성주군 초전면~월항면~선남면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지방하천인데, 중간쯤인 월항면에 성산 이씨 집성촌인 한개마을이 있다.
경부선 철도가 성주를 비켜가게 된 데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한개마을 양반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란 설과 낙동강 쪽 지반이 연약해 교량가설이 어려워 왜관 쪽으로 놓여졌다는 것인데, 진짜 이유가 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는다.
다만, 한개마을 양반들의 반대와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한개마을은 30년 전 작고한 숭정대부(종1품)를 지낸 응와 이원조 대감의 후광 등으로 최고의 기세를 누렸는데, '글을 읽는데 시끄러울뿐 아니라 일제가 만든 철길을 마을 앞으로 지나가게 할 수 없다'며 철길도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던 경부선 철길에서 비켜난 성주는 이후 발전과도 멀어졌다. 당시 조그마한 동네에 불과했던 구미는 철길로 인해 우리나라 최대 내륙 공업도시가 됐고, 속현에 불과하던 칠곡군은 지금은 성주 인구의 3배 가까운 큰 자치단체로 거듭났다.
현재 성주군민 다수는 "100년 전에는 철길과 기차역이 오지 못하도록 했었는데, 지금은 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 유치를 위해 전 군민이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면서 "10년의 세월은 강산을 바꾼다더니 100년은 사람과 그 정신을 바꾸었다"고 했다.
지역 한 원로는 "성주는 경부선 철도 건설에 반대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발전이 지연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성주의 과거 영광을 되찾고 지역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 유치를 성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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