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막 대학에 입학한 때의 일인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와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를 관람하러 영화관에 갔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자리에 앉은 4, 5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옆자리의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계속 영화에 대해 뭐라 뭐라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말겠지'하며 참았는데,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계속해서 쉬지 않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헛기침으로 가볍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고, 여자아이는 눈치채고 말을 멈추었다. 그것도 잠시, 한참 영화가 재밌는 상황이 되자 다시 여자아이의 귓속말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번엔 여자아이의 어깨를 톡톡 쳐서 고개를 돌리게 한 후 "쉿 다른 사람도 같이 보는데, 조용하게 봐야지"라며 타이르듯 얘기를 했다. 영화가 끝난 후 불이 밝아지고, 아이들이 일어나 객석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먼저 계단 쪽으로 나가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자아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뭔가에 크게 머리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너무도 두꺼운 안경에 좌석을 손으로 더듬으며, 겨우 누나가 부르는 쪽으로 다가가는 7세 정도 아이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랬다. 어린 누나가 앞을 잘 볼 수 없는 동생에게 영화의 자막과 내용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고령자나 장애인 등이 그들이 생활함에 불편한 요소인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으로 베리어 프리(barrier free)운동이 사회적, 제도적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문화예술계에서도 그러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베리어 프리 활동으로는 뉴스를 볼 때, 옆에 조그마하게 수화통역사가 나와서 청각장애가 있는 분들을 위해 수화로 통역을 해주는 것부터, 드라마 등의 자막방송과 시각장애가 있는 분들을 위한 화면해설방송 등이다. 또 최근에는 영화 분야에도 이러한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공연의 분야에서는 그러한 부분의 활동이 조금은 미흡한 것으로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영상 등과는 다르게 공연 분야는 사전에 녹음작업을 할 수 없고 녹음을 한다고 하더라도 단락으로 끊어야 하며 또 그런 방식으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 등의 제약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불편함이 누군가에게는 장벽을 허물어 생애 처음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러한 불편함을 오히려 보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관람객들을 위해 조금은 세세한 무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 첨부된 자막을 제공하고,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들을 위해 공연 해설사의 친절한 무대 상황의 설명을 수신기를 통해 전달한다면, 나는 지난 시절 그 어린 남매에게 저지른 실수를 조금은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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