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희망자가 해마다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불씨를 지피며 장기기증 열풍이 불었던 10년 전의 30%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는 것. 어렵게 기증을 결심해도 신체 훼손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불거지는 경우가 많은 데다, 장기기증 활성화를 지원해야 할 지방자치단체는 아예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1990년 "앞 못 보는 이에게 빛을 보여주고 싶다"며 '헌안(獻眼) 서약서'를 작성한 후 실제 2009년 2월 선종하며 각막을 기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평소 김 추기경이 강조해왔던 '생명사랑 운동'이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당시 장기기증 운동은 국민적인 관심과 동참으로 번져나갔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대구경북 지역 장기기증 희망자는 김 추기경 선종 당시인 2009년 1만7천98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3년 1만1천782명, 2015년 6천791명, 지난해 4천902명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10년 새 71%나 줄어든 것이다.
기증 희망자가 많이 감소했지만 실제 장기기증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소폭 증가했다. 다만 장기 이식을 희망하는 대기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대구경북의 장기 기증자는 2014년 248명, 2015년 275건, 2016년 301건, 2017년 320건, 지난해 318건으로 최근 5년간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 이식을 희망하는 대기자가 늘어나는 수준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장기이식관리센터의 설명이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이들은 2014년 309명에서 지난해에는 623명까지 늘었다.
장기기증 관련 단체들은 "지역 특성상 홍보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유교 문화 색채가 강하게 남아있는 대구경북 지역이다 보니 중장년층일수록 장기기증 시 발생하게 되는 신체 훼손에 민감하다는 얘기다.
특히 좋은 뜻으로 부모의 장기를 기증했다가 다른 유가족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등 후유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 때문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는 기증자 모임을 꾸리고, 이들이 정말 사회적으로 숭고한 행위를 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우고 서로 보듬을 수 있도록 심리치료와 여행, 특강 등 다양한 사후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지자체는 장기기증 활성화에 무관심하다. 대구시는 2017년 조례를 통해 9월 9일을 '장기기증의 날'로 지정했지만, 형식적인 행위에 그쳤을 뿐 홍보활동 등 예산 배정은 거의 없는 상태다.
정의석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대구경북지부장은 "장기기증을 알리고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은 힘들고 오랜 과정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 안타깝다"며 "고 김수환 추기경의 숭고한 생명사랑 정신이 다시금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정 지부장은 이어 "장기기증 절차는 정부에서 공정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장기 적출 과정에서 훼손이 발생할 수 있지만 유가족들이 충격받지 않게 최대한 예를 다한다"며 "최근엔 뼈나 피부 등 인체 조직 기증도 이뤄지고 있어 '장기기증 서약'은 본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수명에서 수십명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숭고한 나눔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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