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30년 뒤 대구 도심의 모습은?

장성현 경제부 차장
장성현 경제부 차장

지난 주말 대구 동구의 한 견본주택 앞에 긴 행렬이 늘어섰다. 부정청약 등으로 계약이 취소된 잔여 가구 추첨에 몰린 인파였다. 70여 가구 모집 추첨에 참여한 이들만 1천여 명에 달했다. 이날 풍경은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에도 '나 홀로 활황'을 이어가는 대구의 청약 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대구의 청약시장은 재개발·재건축단지에 집중돼 있다. 연말까지 분양 예정인 3만744가구 가운데 70%인 2만956가구가 도심 재개발·재건축단지다.

아파트 시장이 '거래 절벽' 수준인데도 청약 시장이 열기를 띠는 건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당장 집값이 주춤하더라도 청약 당첨만 되면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너무 올라버린 집값에 청약 당첨 외에는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려 있다.

청약 시장 규제가 느슨한 점도 이유다. 건설사들은 대출 제한에 따른 자금 부담을 줄인다며 1차 계약금을 1천만원으로 고정하고,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준다. 1차 중도금 납부 기한도 계약 8개월 뒤로 미뤘다. 비조정지역의 전매 제한 기간이 6개월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단기 투자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분양 시장은 여전히 돌아간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과열된 재개발·재건축 시장이다. 대구에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 대상지는 모두 232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사업 시행 계획 인가까지 받은 곳도 96곳이나 된다.

건설업계도 앞다퉈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도심에 아파트를 지을 땅이 부족하고, 청약 시장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건설업계는 사업성이 있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이 30~40곳 정도 될 것으로 본다.

30년 뒤의 대구를 상상해봤다. 낡은 고층 아파트 숲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도심의 모습. 노후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홍콩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30년 뒤면 초고령화사회에 인구 절벽이 현실화된 이후다.

정부는 도심이 온통 아파트로 채워지는 상황을 막고자 도심재생사업을 추진해왔다. 2010년부터 진행한 도시활력증진개발사업으로 대구에서만 29곳이 지정됐고, 19곳의 사업이 완료됐다.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시작된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대구시내 10곳에서 주거 환경 개선 및 공동체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경우 도시재생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길게는 십수년씩 지연되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을 기다리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셈이다.

방법이 없진 않다.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정비구역에서 해제되면 재생사업 대상지가 될 수 있다. 추진위가 설립되기 전이라면 주민 30%의 동의만 있어도 해제 신청을 할 수 있다.

반면 서울은 주민 동의가 없어도 정비구역 해제가 가능하다. '역사·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민간위원회를 거쳐 정비구역에서 해제할 수 있도록 시 조례로 규정했다.

주민들 간 갈등이 첨예한 도시정비사업에 지자체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개발사업에 이리저리 해체되는 대구 도심을 살릴 방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도 행정의 일관성을 지켜낼 대구시의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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