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직자가 실형 선고를 받았다.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 억울하게 유죄 판단을 받았다는 여론과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 팽팽하게 대치한다. 한 소설가가 신문 지면을 빌려 재판을 비판한다. '재판관들의 상관은 선언으로써 재판관들에게 암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에 따라 재판관들은 불을 향해 가는 나방처럼 아무런 추론 없이 판결을 했습니다. 그들을 그 선입견에서 빠져나오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법적 오판을 조목조목 비판한 소설가는 프랑스의 문호 에밀 졸라이고, 위 내용은 그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1898년 1월 13일 신문에 실은 글의 일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유대인 출신 프랑스 육군 대위 드레퓌스에게 1895년 1월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한 재판을 비판한다.
이른바 '드루킹'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30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여권은 재판장인 성창호 부장판사를 겨냥해 "사법농단 실체가 드러나자, 여전히 사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양승태 적폐 사단이 조직적인 저항을 벌이고 있다"며 "법과 양심에 따라야 할 판결이 보신과 보복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원색적인 용어로 비난했다.
재판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관계를 재판부 배당 시점부터 알고 있었을 터인데 지금에 와서 이를 비판의 카드로 꺼내 든 여당도 아쉽고, 침소봉대하여 이번 판결을 정치적 호재로 이용하려는 일부 야당도 못마땅하다. 특히 여당의 재판 비판은 에밀 졸라의 그것과 아래와 같이 비교된다.
첫째, 비판의 시점이다. 에밀 졸라는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 재판을 비판하고 재심 요구에 힘을 보탠다. 김 지사의 경우는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과도하게 재판 비판을 한다면 재판을 앞둔 2심 재판부에 대한 외압이 될 수 있다.
둘째, 비판의 내용이다. 드레퓌스는 유대인이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반유대주의가 만연했고 재판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밀 졸라는 출신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선입견을 비판했다. 반면 이번 재판 비판은 '그 사람은 누구의 사람' 곧 특수관계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특수관계가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하는 것은 또 다른 선입견이 될 수 있다. 선입견을 비판하는 것과 선입견에서 비롯된 비판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비판의 주체이다. 에밀 졸라는 유대인이 아니고 드레퓌스와 애초 일면식도 없었다. 에밀 졸라가 죽은 지 4년 만인 1906년, 재심 재판부는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하지만, 실형 선고와 망명 등 에밀 졸라가 인류의 이름으로 진실을 외친 대가는 혹독했다. 이번 경우는 어떠한가? 김 지사의 사활은 여당의 정치적 입지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재판 비판의 순수성이 아쉬운 대목이다.
"증오심을 유발하는 데 애국주의를 이용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나는 고발한다'에 나오는 말이다. 에밀 졸라는 애국주의를 말했지만, 그 자리에 헌법, 개혁, 국민, 다른 어떤 말을 넣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법농단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법원의 공정한 판결과, 화합을 도모하는 국회의 성숙한 정치를 기대해 본다.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재판, 정치 영역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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