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야들아 소 죽 줬나∼" 하시던 아버지와 누렁소

생전 아버지의 모습.
생전 아버지의 모습.

상주시 함창이 고향인 아버지(박노일)는 장날이 되면 어김없이 거나~하게 취하신 모습으로 삽짝을 들어서시며 "야들아 소 죽 줬나~" 하시곤 하셨다.

그러자 어머니는 "당신은 우째 식구 안부는 안 묻고 소만 묻 소~"라고 투덜거렸다.

그 당시 아버지는 소를 자식처럼 아끼셨다. 그도 그럴것이 그 시절 소 한 마리는 재산의 상징과도 같았다. 어지간한 머슴 한 몫을 하던 때였기도 했으니.

처음 송아지 한 마리를 들여왔을 때 아버지는 정말 좋아 하셨다.

코뚜레도 못한 아기 송아지.얼마나 정성을 들이셨는지 무럭무럭 커 주었고 다시 예쁜 송아지까지 낳아 주었다. 그 송아지는 어미가 되어 아버지께 귀한 목돈을 안겨 주고 때로는 오빠의 사업자금이 되어주기도 했다. 누렁소는 또 봄부터 가을까지 논밭도 갈고 달구지를 끌어 집안의 거름을 들로 실어다 나르고 들에 있는 곡식 단을 집으로 나르며 아버지 일들을 거들었다.

길 다란 고삐 줄로 오른쪽으로 당기면 저 먼 새들 논으로 왼쪽으로 당기면 앞 논으로 향하며

그렇게 소는 아버지와 한마음 한 몸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에 "아이구 소가 없다~"하시는 어렴풋한 아버지 말씀에 깨어보니 마답(마당가 소 메는 곳)에 있어야할 소가 없어졌다.전 날 송아지를 장에 데리고 가 팔고 왔었는데 저녁 내내 울다가 고삐를 끊고는 십리 길의 장터로 새끼를 찾아 간 것이었다. 한달음에 집을 나서신 아버지, 동네 어귀를 막 지나려는데 어디선가 소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혹시나 싶어 찾아가니 동네 한 어른이 어디 갔다 늦게 오시는데 소 한 마리가 급히 가는걸 보시곤 언뜻 우리 집 송아지 팔았다는 것이 생각나 잡아 두었던 것이었다. 자식 떼어내고 힘들어하는 소에게 아버지는 더욱더 정성을 들이셨다. 겨울에 짚만 먹이면 맛없다고 가을에 서마지기 콩밭의 콩잎을 손수따서 말리시고 아끼던 콩 한줌과 등겨 한바가지 꼭 넣어 소죽을 끓이시고 겨울엔 소도 등이 따뜻해야 한다시며 솜을 넣어 누빈 등 옷을 만들어 입히고 외양간 문도 멍석으로 막아 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소사랑에 엄마는 살짝 시새움을 내 비칠때도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어화 어화 어허이,,,"

사람들의 어깨에 얺쳐 진 꽃상여가 마당을 한 바퀴 돌아 삽짝문을 나서자 그때부터 말뚝에 메인 소가 울기 시작 했다.마을 어귀를 돌아 저 멀리 상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쪽을 향해 고개를 들곤 음 무~,음 무-~ 하며 한참 동안을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그 소를 보며 동네 사람들도 슬퍼했다.

저 쪽 세상에서 울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 길에

서럽게 울어주던 그 소를 만나셨을까?

지금도 삽짝 논에서 쟁기질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랴-하면 앞으로 가고, 어더더-하면 오른쪽으로 돌고

어디어디~ 하면 왼쪽으로 돌고 워-하면 서던

소와 함께 일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딸 상순이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