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빅데이터로 본 한 주] 밸런타인데이, 그리고 막힌 야동사이트

야동사이트 막히니 성인들이 기가 막혀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메모, 선물 등 검색어 퍼레이드
1910년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이기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https 차단 정책 반대 의견. 18일 정오 기준.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난데없는 '야동(야한 동영상) 볼 자유'가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부가 '리벤지 포르노' 등 불법 촬영물 범죄를 막겠다며 내놓은 처방이 '야동'의 수장고였던 해외 인터넷 사이트 접속 차단으로 이어진 탓이다. 급기야 정부의 움직임에 맞서 청와대국민청원이 등장했고, 촛불집회로까지 이어졌다.

초콜릿만 주고받는 날인 줄 알았던 '밸런타인데이' 관련 검색어가 두각을 보인 한 주였다. '밸런타인데이 문구', '밸런타인데이 선물' 등의 검색어는 국내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떠오르는 신흥 기념일인 할로윈데이(10월 31일)와 함께 밸런타인데이가 하나의 기념일로 고착화됐음이 포털사이트 검색량에서 나타났다.

◆막힌 야동사이트, 성인들은 기가 막혀

속칭 '야동사이트', 포르노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웹사이트 접근이 불가능해졌다. 이를 기막혀 하는 성인들의 울분이 쏟아지고 있다. 비밀스러운 사생활, 야동 볼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밸런타인데이의 상징이 돼 버린 초콜릿 선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https 차단 정책 반대 의견. 18일 정오 기준.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오른 문제의 본질은 'https' 차단이다. 국민청원 동의자 수는 11일 등록 후 일주일 만에 23만 명을 넘어섰다(18일 정오 기준).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는 https 차단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가 담겼다.

정부가 해외 성인사이트와 도박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겠다며 도입한 규제인 https 차단은 정부가 접속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부작용으로 인터넷 검열의 시초가 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중국의 인터넷 검열의 과정을 똑같이 밟아가는 것 같다며 반대 의견을 펼쳤다.

해외사이트에 퍼져있는 리벤지 포르노의 유포 저지, 저작권이 있는 웹툰 등의 보호 목적을 위한다는 명목에 동의하지만 다른 방식을 강구해 달라는 주장이었다.

16일에는 '야동 볼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도 열렸다.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집회 규모는 크지 않았다. 50명 남짓 참가한 집회에는 '야동차단 내걸고 내 접속기록 보겠다고?', '바바리맨 잡겠다고 바바리 못 입게 하는 건 부당하다'라는 피켓이 눈길을 끌었다.

국민청원 동의자수가 20만명을 넘으면 청와대는 답변을 해야한다. 청와대가 아직 답변을 내놓진 않았으나 이와 관련해 주무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14일 보도자료를 내고 "합법적 성인 영상물이 아닌 불법 촬영물을 유통하는 해외 사이트만 차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밸런타인데이

'Valentijnsdag(네덜란드), Valentinstag(독일), Saint-Valentin(프랑스), San valentin(멕시코), Valentijn(벨기에), Hjärtans Dag(스웨덴), Ystävänpäivä(핀란드), svatý Valentýn(체코), Valentin nap(헝가리), 情人節(대만, 홍콩), バレンタインデー(일본)'

밸런타인데이의 상징이 돼 버린 초콜릿 선물.

2월 14일은 특정 계층의 다소 특별한 날이었다. '저축의 날'이나 '유엔의 날'처럼 달력에 표시돼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연애중인' 그들은 기억한다. 심지어 몇 달 전부터 고민한다. 고급 레스토랑은 고사하고 패밀리 레스토랑 예약도 벅차서다. 연애를 준비중인 이들도 기억해야 할 날이다. 외식을 위해 이날은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연인들의 날인 줄은 진작 알았다. 다만 초콜릿만 주고받는 날인 줄 알았던 그날이 아니었다. 그날에 대한 부담감은 검색량에서 두드러졌다. '밸런타인데이 문구', '밸런타인데이 선물'이 웬만한 스포츠 이벤트나 스캔들보다 앞섰다.

'연애를 책으로 배운다'는 말은 유물이 됐다. 얼마나 '밸런타인데이'가 고민이 됐으면 검색어로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두들겨 넣어봤을까. '연애를 검색으로 배운다'는 말이 요즘 시대엔 더 정확해 보인다.

흥미롭게도 국경일에 견줄 만큼 검색량에서 두각을 보인 '밸런타인데이'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검색량 상위권에 올랐다.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는 물론 베트남에서도 2월 14일은 압도적 차이로 '밸런타인데이'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놀라운 것은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비록 압도적이진 않지만 검색어 상위권에 عيد الحب (eyd alhabi, '아이들 할바'로 들림)가 여러 겹으로 노출돼 있다. '밸런타인데이'라는 뜻이다. 이는 유대교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방정교회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2월 15일 '캔들마스'를 맞아 'Сретение Господне(Candlemas, 캔들마스)' 검색량이 더 많았을 뿐 각국에선 '밸런타인데이' 관련 검색량이 크게 늘었다.

◆밸런타인데이를 밀어낸 축구

'밸런타인데이' 관련 검색어가 상위권에 오르지 않은 나라를 찾기가 어려웠을 정도였다. 자국 여자 테니스 선수 시모나 할렙의 카타르 오픈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 루마니아, 남미의 유로파리그로 불리는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맞붙은 코린치앙스(브라질)와 라싱(아르헨티나)의 빅매치로 관심이 더 높았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이밖에도 영국과 아일랜드는 '아스날'을, 포르투갈은 '벤피카'를 터키는 '갈라타사라이'를 검색어 1위로 올렸다. 죽자 사자 축구다.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맞붙은 코린치앙스(브라질)와 라싱(아르헨티나)의 경기 장면. 출처=AP연합뉴스

밸런타인데이가 거의 안 먹히는 건지, 이미 잘 알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밸런타인데이 관련 검색어가 거의 없었던 곳이 이탈리아였다. 이곳 역시 오로지 축구였다. 유벤투스와 프로시노네의 경기를 가장 많이 검색했다.

확연하게 눈길을 끈 건 인도네시아의 밸런타인데이 검색어였다. 모모랜드 데이지가 밸런타인데이보다 많이 검색됐는데 아이돌그룹 아이콘의 송윤형과 밸런타인데이 커플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송윤형은 1995년생, 데이지는 1999년생이다. "사랑을 했다~ 어떻게 해, 베이비 텔 미 와이~"

한편 밸런타인데이가 알려지지도 않았던 1910년의 2월 14일은 우리에겐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혐의로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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