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린 부산시장

최정암 서울지사장
최정암 서울지사장

서울에서도 가덕도 신공항이 화제다. 화제라기보다는 비판이 주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부산경제인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오거돈 부산시장 등이 가덕도 신공항을 건의하자 "(부산·울산·경남 자체 검증 결과에 대해) 5개 광역단체장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결정이 수월할 것이고, 생각들이 다르다면 부득이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검증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그런 논의를 하느라 사업이 표류하거나 늦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부산은 대통령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환영 일색이다. 부산 정치권도 여야를 떠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이 될지 안 될지 현 단계에서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산이 고향 출신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그것도 야당이 아니라 여당 출신 시장이 말이다.

대통령만 곤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향후 정부, 여당에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

엄청난 산고 끝에 결정된 '김해공항 확장, 대구공항 통합이전' 정책을 뒤집어엎고 이 정부가 부산 민심을 얻기 위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강행한다고 치자. PK를 제외한 전국 여론은 고향 퍼주기,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 행정이란 비판이 고조될 것이다. PK는 외톨이가 된다는 뜻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 내놓은 발언이 결국 더불어민주당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격이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결정되면 과연 부산의 민심이 달라질까. 신공항은 앞으로 아무리 빨라도 10년 뒤의 일이다. PK에서 작년 지방선거를 싹쓸이할 때와 지금의 민심이 다른 건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롯됐다. 서민들 삶의 질이 팍팍해져서다.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적폐 정권 때보다 못하다는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경제를 살리지 못한 청와대와 정부, 집권 여당의 무능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는데 공항을 건설한다고 해서 부산 시민들이 지지를 보낼까.

대통령을 모신 자리에서 부산은 공항 문제를 거론은 해도 답변 요구는 말아야 했다. 예의에도 어긋난다. 지지율이 급락하자 고향으로 달려간 '심성 고운 대통령'이 시장과 경제인들의 거듭된 강요성 질문에 긍정적으로 읽힐 수 있는 답변을 안 할 도리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 때와 박근혜 정부 때 영남권 신공항으로 밀양을 지지한 대구경북은 객관적 평가에서 가덕도를 내세운 부산에 비해 두 번이나 높은 점수를 받고도 버림받았다. 그래도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는 대통령을 닦달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드는 게 대구경북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오히려 이들은 분노한 민심을 달랬고, 언론을 설득했다. 그게 광역단체장이 할 일이다.

광역단체장은 정부를 공격하고 정치권을 질타해도 대통령이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해둬야 한다.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자신의 공약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산의 신성장동력을 찾을 기회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된다. 더욱이 고향을 도우려던 대통령과 집권 여당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단체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PK 출신 기자로서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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