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채무에 해당하는 단어는 모두 '종교적 죄'(sin) 또는 '범죄'(guilt)와 동의어이다. 그리고 이는 화폐라는 단어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 예로 화폐의 독일어 단어 켈트(Gelt)는 '앙갚음'이라는 뜻의 페르겔퉁(Vergeltung)에서 기원하는데 이 말은 '빚(score) 청산'과 '보복'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score는 본래 즉시 갚지 못한 것을 수량으로 바꾸어 나무 등에 칼로 베어낸 자국을 뜻하는데 여기서 '외상 빚'이라는 뜻과 '원한' '복수'라는 뜻을 함께 갖게 됐다고 한다.
채무와 범죄, 화폐라는 말의 연관성은 일본어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일본 경제학자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 1874-1930)에 따르면 일본에서 지불(支拂)이라는 개념은 고대 일본의 신도(神道) 제사 때 '죄 씻김'(하라이, 払い)이라는 정화 의식에 기원한다. 당시 신도에서 사회적 책무의 많은 것이 '불결함'(게가레, 穢れ)으로 간주됐고, 이를 '하라이' 하는 것이 개개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는 행위였다는 것이다.('돈의 본성', 제프리 잉햄)
모든 종교가 그렇듯 정화 의식에는 공물(貢物)을 바쳐야 한다. 죄를 씻으려면 공물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규칙은 살인 등의 사회적 범죄에도 적용되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신 가치 있는 물건이나 화폐를 '지불'하는 것으로 속죄와 보상이 이뤄졌다는 것이 화폐역사학자들의 분석이다. '불결한 것을 털어낸다'고 할 때의 '하라이'와 '지불한다'는 뜻의 '하라이'가 어원상 동일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이 던지는 메시지는 채무는 곧 범죄이고, 범죄(종교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는 반드시 씻어야 하며, 그래야 채무자는 종교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라고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취약 계층이 아닌 일반인도 금융권 채무 원금의 최대 70%를 감면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빚은 갚아야 한다'는 자기 책임의 원칙을 허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는 채무자들만 바보로 만드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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