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밑바닥에 있으면 짓눌리는 거고, 정상에 있으면 누리는 거야". 최근 종영한 드라마 'SKY 캐슬'에서 로스쿨 교수 차민혁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라'고 소리친다. 피라미드 모형까지 두고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라고 말한다. 심지어 같은 반 친구가 살인범으로 몰리자 '경쟁자가 사라진 것'이라는 섬뜩한 말도 서슴치 않는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간 '바벨탑 공화국'에서 한국사회를 '바벨탑'에 빗대어 설명한다. 지은이는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각자도생형 투쟁이 결국 사회를 망가뜨린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이런 행태를 바벨탑에 빗대 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사회'의 심성과 행태,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라고 표현한다.
◆초집중화와 서열화로 빚어진 문제들
지은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서열화돼있다고 말한다. 주거지에서부터 대학 입시, 취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에 서열은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서열 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일본만 해도 중소기업의 연봉은 대기업의 80퍼센트를 넘지만, 한국은 겨우 절반 수준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임금은 최대 4.2배 차이가 난다. 이같은 서열 격차로 우리 사회는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이 됐다.
우리 사회에서는 집도 서열화돼있다. 아파트 이름이 사회적 지위를 대변해주고, 고급아파트 주문들은 바로 옆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넘어 올 수 없게 담을 만든다. 서울 거주 20~34세 1인 가구 중 일명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으로 불리는 곳에 사는 주거 빈곤 가구 비율은 2005년 34%에서 2015년 37.2%로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고시원의 3.3㎡ 당 월세는 13만6천으로 최고급 아파트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11만6천원)보다 더 비싸다.
고시원이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건 '초(超)집중화(hyper-centralization)'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집중화란 정치적 권력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자원들이 지리적·공간적으로 서울이라고 하는 단일 공간 내로 집중됨을 의미한다. 이런 중앙 집중은 집중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중첩되면서 집적되는 형태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2013년 억대 연봉자 70%는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으며, 2015년 취업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기업들의 신규 채용공고의 73.3%가 수도권 지역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 속에도 초집중화가 있다.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고, 주변에도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달라졌다. 게다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는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돼야한다. 세계 무대의 선두에서 맹활약하는 재벌 기업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지금도 중소기업을 희생으로 한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고연봉도 다른 사람들의 저임금이라는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수평지향적 삶을 통해 바벨탑 무너뜨릴 수 있다
초집중화로 인한 서열격차는 한국을 누군가에겐 '천국'이지만 누군가에겐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
한국은 음식 배달의 지상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입장을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천국'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2011~2016년 23곳의 병원 응급실에서 집계한 교통사고는 총 26만 여 건인데, 이 중 배달 오토바이 사고 건수가 4천500건에 이르며 15~19세 사고자가 15퍼센트에 달한다. 또 싼 전기료의 뒤엔 최소한의 안전 대책도 없이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가 있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세계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그 이면을 살펴보면 예외 없이 누군가의 희생 또는 시장논리에 의한 사실상의 '수탈'이 숨어 있다. 우리는 한류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만, 이름 없는 영상 스태프 노동자들은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감정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다.
지은이는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를 대한민국의 민낯이라 말한다. 바벨탑 공화국의 시민들은 자신의 서열과 그에 따른 이익을 지키려는 데는 악착같고 집요하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마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작은 바벨탑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동력 삼아 바벨탑 공화국이 건재한 동시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게 된다.
책에서는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왜 아파트와 서울은 성역이 되었나',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불로소득 부자를 양산한 약탈 체제',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강남에 집중되는 공공 인프라 건설사업', '왜 지방민은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등 우리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는 현안들을 사례를 통해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같은 문제들은 바벨탑같은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꾸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는 없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털리티'에 근본 문제가 있으며, 오직 경쟁 일변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기존의 발상에 '협력'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주입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28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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