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거리 문화라는 말이 있다. 패거리 문화는 네 편 내 편으로 나누어 내 편에 속한 사람은 잘 챙기고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은 배척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판단의 기준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누구 편에 속해 있는가이다.
'형제는 용감했다'라는 말이 있다. 어릴 적에 형이나 아우가 이웃의 누구와 싸우면 덮어놓고 형제 편을 들어 편싸움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형제가 없는 쪽이 무조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형제는 용감했다'의 어른 버전이 '형님'문화이다. 외지에서 대구로 살러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구에서는 이 '형님'이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게 끝나더라고 한다. 형님, 아우 하면서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 세력을 형성하고 외부 세력을 배척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대구가 유독 보수적이고 외지인을 배척한다고 오해받는 이유가 바로 이 패거리 문화 탓이다.
대구에 산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형님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지인은 대구에서는 영원히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은퇴하면 과연 대구에서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로 떠나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만큼이나 살았으면서 왜 대구에 적응하지 못했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에게 과연 마음의 문을 모두 열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사안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비판적인 사유 없이 무조건 편드는 문화는 아주 위험하다. 그들은 그들만의 집단 안에서는 생존할지 모르나 더 큰 집단에서는 생존의 동력을 상실한다. 그들은 사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분석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내 편을 들어주는 누군가만 찾고, 문제 해결 또한 그런 식으로 한다.
살면서 내 편은 필요한데 그것은 삶에 지치고 위로받고 싶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나에게 공감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이다. 그렇다고 내 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내가 잘못했을 때 무조건 편을 들어주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나를 편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편 나누기를 하는 사람의 특징은 비판적 사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맹목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태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통해서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려내는 것은 인간이 처한 실존적 조건이 될 것이다. 천영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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