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3·1만세 운동, 3월 5일 성 유스티노 신학생들이 먼저 시작했다

드망즈주교 일기 통해 사실 알려져…최초로 알려진 서문시장보다 3일 빨라

대구 3·1만세운동이 1919년 3월 5일 성유스티노신학교 학생들이 교정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드망즈 주교의 일기. 1987년 한국교회연구소가 한글로 번역해 발간한
대구 3·1만세운동이 1919년 3월 5일 성유스티노신학교 학생들이 교정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드망즈 주교의 일기. 1987년 한국교회연구소가 한글로 번역해 발간한 '드망즈 주교 일기(1911~1937) 278쪽 1919년 3월 7일 일기내용. 대구가톨릭대 제공
드망즈 천주교대교구 초대 교구장의 프랑스어 원본 일기. 대구가톨릭대 제공
드망즈 천주교대교구 초대 교구장의 프랑스어 원본 일기. 대구가톨릭대 제공

대구에서 3·1만세 운동이 최초로 일어난 때가 1919년 3월 5일이라는 기록이 발견됐다.

지금까지 대구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대구가톨릭대학교 전신인 성유스티노신학교 학생들은 3월 5일 저녁 성유스티노신학교 교정에서 먼저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신학생들도 자주독립을 위한 인도적 봉기에 당당히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당시 천주교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플로리안 드망즈 주교(1875~1938)의 일기를 통해서 알려졌다.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드망즈 주교는 1919년 3월 7일(금) 그의 일기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전 황제(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계기로 서울과 다른 곳에서 조선 독립을 위한 시위를 했다.(중략) 대구 신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그저께(3월 5일) 저녁에 운동장에서 독립을 위한 노래를 불렀고 교장(샤르즈뵈프 신부)은 그것을 그만두게 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적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1919년 3월 5일 저녁 성유스티노신학교 교정에 섰던 신학생 59명(당시 나이로 만 16세에서 20세로 추정)은 3·1운동의 웅혼한 물결을 타고 일제 침략에 맞서 독립과 민족자존 정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구가톨릭대는 이를 기념해 3월 5일 오후 3시 대구 남산동 유스티노 교정 대강당에서 천주교의 항일운동에 대한 학술적 조명을 위한 '3·1운동과 대구대교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오후 2시엔 유스티노 교정 성유스티노성당에서 '3·5만세운동 기념 음악회'도 열 예정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