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가 오래될수록, 건축물도 함께 늙어간다. 그래서 낡은 건물을 허물고 높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다. 하지만 무조건 부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새로 짓는 건물은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축물을 버리지 않고 새롭게 고쳐 쓰는 '재생건축'이 주목받고 있다. 재생건축은 단 하나의 건축물을 바꾸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건축에는 지역사회와 장소의 기억, 지역 주민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축은 주변 개별 건축들과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때문에 건축을 재생한다는 것은 건축물 하나가 아닌, 건축물이 위치한 장소, 지역 사회 전체를 재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존의 외관과 형태를 그대로 둔 채 내부의 활용도를 바꾸는 방법이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건물은 독특한 외관과 이야기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도시는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지역의 역사를 지닌 건축 자산을 남길 수 있어 좋다. 경제적 가치에 문화적, 역사적 가치 등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새롭게 태어난 재생건축 몇 채를 소개한다.
◆ 막걸리 양조장서 문화공간·수제맥주집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던 양조장이 문화공간이나 시대 흐름에 따라 수제맥주집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 있다.
대구시 중구 서성로 약령시 서문 입구에 위치한 '태갤러리·류태열사진연구소'는 일제강점기 때 고려양조장이 위치했던 자리다. 이곳은 적산가옥(敵産家屋: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건물)이다. 담쟁이 덩굴로 고풍스럽게 외관을 감추고 있는 이곳은 1928년 지은 구 고려양조장 자리다. 1층은 발효실과 판매장, 2층은 막걸리 재료인 고두밥을 식히고 말렸던 곳이었다. 막걸리 발효실은 창문도 거의 없고 벽도 50, 60cm 정도로 일반 벽보다 2배 이상 두껍다. 온도 변화가 거의 없는 이곳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목조로 된 2층 고두밥 건조실은 고두밥을 빨리 잘 말리기 위해 사방이 창문으로 돼 있다. 이곳은 아래층과 달리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아랫층과 윗층 사이에 물건을 오르내릴 수 있는 구멍이 있다.
ㄴ자로 된 양조장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술향기에서 문화향기를 내뿜는 도심 속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리모델링을 하면서 전체 뼈대와 골격, 분위기는 90년 전의 건물 느낌을 그대로 살렸으며, 갤러리와 사진연구소, 카페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변화시켜 찾는 이들에게 온고지신의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재 이곳은 류태열 사진작가가 몇 년 전부터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발효실·판매장이 있었던 1층은 사진연구소와 카페로, 2층 고두밥 건조장은 갤러리로 변신해 운영되고 있다. 류 작가는 "손 댄 곳 거의 없을 정도로 보존이 잘 돼 2층 나무 창문만 알루미늄 새시로 바꿔 달았다"고 말했다.
마당에는 담쟁이와 감나무, 소나무, 대나무, 목련 등이 자라 계절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봄이 되면 담쟁이 덩굴이 건물을 덮은 모습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류 씨는 "미술이나 음악, 사진 등 문화공간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도심의 새로운 문화가 살아 숨쉬는 명소로 꾸몄으면 한다"고 말했다.

방천시장(대구시 중구 대봉동)에도 양조장을 수제맥주집으로 리모델링한 곳이 있다. 이곳 역시 적산가옥으로 양조장과 목화솜을 타는 솜공장, 우산공장 등 손바뀜이 몇 번 이어지다가 지난해 정만기 씨가 매입해 건물과 우물, 집수정(集水井) 등 주요 포인트를 살려 지난 1일 오픈했다. 아직도 당시의 천장과 서까래, 대들보 등 뼈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정 대표는 "건축대장을 보면 한때 '상주양조장', '대도양조장'이란 이름이 있다"면서 "다른 이름을 염두에 뒀지만 양조장이었던 옛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대로 쓰고 있다. 특별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뼈대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리모델링했다"고 했다. 막걸리 발효실은 가게로, 뒤쪽 살림집은 수제맥주를 제조하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다. 가게 안에는 막걸리를 거른 뒤 찌꺼기 등을 모아 두는 집주정도 강화유리로 덮어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가게 옆에는 물 공급을 위해 판 4개 우물 가운데 1개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 대표는 "옛 모습을 잘 보존한 모습으로 6월쯤에 정식 오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애깃거리가 있는 한옥
현재 리모델링이 한창인 대구 중구 종로 2가에 있는 한옥은 100년이 된 집이다. 60, 70㎡ 제법 큰 규모의 한옥은 100년 된 집으로 보이질 않을 정도로 주춧돌과 대들보, 서까래 등이 양호한 편이다. 대청마루 상량문에는 '1919년 기미년 9월 18일'이라고 쓰여져 있다. 한옥 가장자리에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양변기가 설치돼 있다. 넓은 마당에는 당시에 판 것으로 보이는 깊은 우물과 오래된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집 뒤에는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7, 8m 높이의 굴뚝이 잘 보존돼 있다.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은 세월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곳곳이 흐물어져 있다.
몇 년 전 이 집을 매입한 신홍식 씨는 "달성 서씨 문중이 살았던 집으로 이런 한옥을 처음 봤다. 보자마자 보존 가치가 있는 집으로 생각했다. 집 규모도 크고, 100년이나 됐고 방치돼 있었지만 원형이 잘 보존돼 있었다. 리모델링할 때 서까래 몇 개만 갈았다"고 했다.
현재 안채는 리모델링을 거의 마쳤고, 아래채 공사가 한창이다. 신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중구에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한옥이 꽤 많았는데, 거의 허물어졌거나 상업적인 건물로 재개발됐다. 지금이라도 실상을 파악해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씨는 "한옥을 잘 리모델링해 시민, 관광객이 머무는 문화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특히 근대골목투어 길에 이런 오랜된 한옥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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