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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식의 여럿이 하나]다문화정책의 러큐너

배상식 대구교육대학 교수
배상식 대구교육대학 교수

영어에 '러큐너'(lacuna)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은 '원문의 생략 부분이나 누락된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주로 '있어야 할 것이 빠진 부분'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우리 사회 다문화 정책에서도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거나 보완해야 할 정책적 빈틈, 즉 러큐너가 많이 있다. 작년부터 정부의 제3차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이 추진되면서 기존의 다문화 정책에서 새롭게 변화된 부분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다문화가족 자녀에 관한 지원 정책이다. 기존 정책에서는 다문화가족 자녀의 한국어 능력 향상이나 학교생활 초기 적응 부분 등에 초점을 두었다면, 새롭게 바뀐 정책에서는 청소년 성장 지원 사업이나 성장 배경이 특수한 중도입국 자녀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정책의 전환은 이미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 수립 후 그 성과도 어느 정도 이루었기 때문에, 이젠 우리 사회 속에서 다문화가족의 안정된 정착을 위해 그 자녀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따르면, 다문화가족의 범위는 한국인과 결혼이민자(외국인)로 이루어진 가족과, 한국인과 귀화자로 이루어진 가족으로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귀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이나 그 자녀는 다문화가족의 범위에 결코 포함될 수 없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문화가족의 자녀는 국제결혼 가정 자녀와 외국인 가정 자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따르면, 외국인 가정 자녀들은 다문화가족의 범위에 포함될 수 없으나,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그 자녀들이 다문화 학생의 유형에 포함되어 함께 교육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을 배후에 두고 있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의 경우 다문화 학생이 371명이나 되는데 특히 이들 다문화 학생들 중 외국인 자녀가 268명으로 다문화 학생의 72.2%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천북산업단지나 석계산업단지를 생활기반으로 삼고 있는 경주시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다문화 학생이 159명이나 되며 특히 이들 다문화 학생 중 외국인 가정 자녀가 90.6%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외국인 가정 자녀들은 대부분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여 학교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체류로 자신의 진학이나 진로 부분에 있어서도 고민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을 경우 이들 학생들을 지도하는 담임교사의 어려움은 또 어떨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따라서 다문화가족은 여성가족부, 외국인 가족은 법무부에서 담당하는 문제나 혹은 다문화가족의 범위나 다문화 학생의 유형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외국인 가정 자녀가 일반학교에 입학 혹은 편입하려면 적어도 한국어 구사능력을 어느 정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급증하는 외국인 가정 학생들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는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이들 외국인 가정 학생들은 주로 초등학교에 많으나 점차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인원도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새로운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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