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창] 칠레의 환경정책과 인간 삶의 질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학과 교수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학과 교수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학과 교수

오존층 파괴·대기오염 몸살 칠레

단순 규제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

미세먼지 저감만 신경 쓰는 한국

원인 규명·국제적 협력이 먼저다

남반구 최남단 도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 칠레)에 6개월이 넘는 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왔다.

햇볕이 그립기도 하겠지만, 자외선이 너무 강해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외 활동을 할 때는 긴 소매와 긴 바지, 목을 덮는 모자 착용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자외선 차단제 사용도 필수다. 등하교 때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학생들까지 보인다. 오존층 구멍이 가장 크게 관측된 2000년대 초반에는 낮 시간 외출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을 만큼 이 지역의 환경 문제는 인간 삶을 위협하고 있다.

남극 대기권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면서 강한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인데 자외선은 피부암, 백내장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고, 동식물에도 영향을 미쳐 생태계를 파괴시킨다.

1985년 오존층 구멍이 처음 관측된 이후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협약, 몬트리올협약 등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통해 프레온 가스 사용이 줄면서 오존층 구멍이 줄어들긴 하였으나 최근에는 사염화탄소 사용 증가로 그 회복 속도가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칠레는 오존층 파괴의 직접 당사국이 아니면서 피해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협력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2006년 자외선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목적의 환경법을 제정하였다.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정부는 국민들이 언제든 정확한 자외선 지수를 알고 대응할 수 있도록 오존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국의 자외선 지수를 지역별로 발표하고, 모든 언론이 오존 예보를 하도록 했다. 위험 단계에 이르면 학생들의 야외 활동은 물론 야외 작업장 노동자들의 야외 노동도 제한한다.

학생들에게는 오존 센서를 제공하고, 자외선 노출의 위험을 알리는 시민교육을 강화하기도 했다.

칠레의 환경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면 장작 난방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해진다. 칠레 중남부 가정의 77%가 장작 난방을 하는데, 노후화된 보일러가 미세먼지를 필터링하지 못하면서 밀폐된 가정 내의 공기뿐만 아니라 집 밖의 대기 질을 떨어뜨린다.

또한 충분히 건조되지 않은 장작 사용이 많아 불을 붙이면 수분 때문에 점화가 잘 되지 않고 그을음을 내면서 불완전연소를 하게 되는데, 이때 생성되는 일산화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다. 날이 추워지는 4월부터는 중남부 지역의 각 가정에서 배출하는 굴뚝 연기가 도시를 뒤덮어 앞이 보이지 않고, 호흡기 질환과 심폐 질환 환자가 증가한다.

칠레 정부는 1991년부터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권고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환경단체, 학자들이 모여 오랜 기간 숙의의 과정을 통해 지구 환경을 보존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을 확대한다는 인식 기반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환경법 합의에 이르렀다. 자동차 5부제, 장작 보일러 사용 금지와 같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산림 조성 단계부터 장작 유통, 소비윤리, 환경보호, 국민건강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는데, 대기환경 측정소를 확대하여 대기환경 경보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시민들이 미세먼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였으며, 미세먼지의 위험성과 친환경 소비에 대한 시민 교육을 강화하였다.

최근 우리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특별법은 원인 규명과 국제적 협력보다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 휴교 권고나 노후 차량 진입 규제와 같은 저감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속적인 저감 정책과 더불어 현재 미세먼지에 노출된 국민 건강과 환경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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