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을 걷다

미식기행의 안동, 알고보면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 문화의 거리, 웅부공원, 안동교회... 역사의 무대였던 곳
이상룡, 이상동 형제의 생가 임청각은 복원 초읽기

혀의 기억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마치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움직이는 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마련이었다. 안동역 광장을 나서면 설레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기억의 경로였다. 안동역사를 나와 왼쪽으로 향하기만 하면 됐다. 찜닭의 찰진 당면 면발이 걸음을 끊어지지 않게 이어줬고, 끈적한 크림치즈빵의 풍미가 공중부양도 서슴지 않게 했다.

미식로드 안동에 바야흐로 봄이 왔고 어김없는 '설정(舌定)'에 따라 한 바퀴 돌기 참 좋은 때가 됐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여느 때처럼 먹고, 즐기고, 힐링하고 돌아가던 그 길에 '100년 된 삼일절'이 따라 나선다. 아우내장터, 유관순, 대한독립만세가 흩어져 기억돼 있던 삼일절에 임청각, 이상룡,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뚜렷이 보인다.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을 통해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기여하는 등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선생 생가인 임청각.일제가 독립운동의 정기를 끊어버리겠다며 임청각의 땅을 수용한 후 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놓았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을 통해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기여하는 등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선생 생가인 임청각.일제가 독립운동의 정기를 끊어버리겠다며 임청각의 땅을 수용한 후 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놓았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비만 걱정 말고 걷자

찜닭, 간고등어, 헛제삿밥, 식혜, 찰떡 먹으러 왔던 안동 맛집 투어에 익숙한 발걸음이었다면 올 봄, 100주년을 맞은 3.1운동을 되새겨 '3.1운동의 흔적 따라 걷는 안동'도 흥미로운 도전이다.

마침 한국관광공사도 '3.1운동 100주년'이라는 테마로 3월에 가볼 만한 7곳을 추천했다. 그 중 한 곳이 안동이다. 2017년 10월 광복회 안동시지회와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역시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의 주요 사적지 21곳을 꼽았다. 서울보다 넓은 안동시 전체로는 21곳이지만 임청각 등 안동시내에 있는 곳들로 제한하면 10곳이다. 걸어 다니기 알맞다.

독립운동가 향산 이만도가족이 거주한 향산고택.아들은 제1차 유림단 의거(파리장서)를 이끈 중업,며느리는 안동출신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락,손자 동흠과 종흠도 조국광복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 3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독립운동가 향산 이만도가족이 거주한 향산고택.아들은 제1차 유림단 의거(파리장서)를 이끈 중업,며느리는 안동출신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락,손자 동흠과 종흠도 조국광복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 3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 시내의 주요 사적지는 동쪽의 임청각, 서쪽의 복주여중, 남쪽의 문화의 거리 광장, 그리고 북쪽으로는 향산고택까지다. 간단히 말해 임청각, 복주여중, 향산고택을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이다. 총 5km 남짓이다.

5km가 부담스럽다면 임청각에서 안동교회까지 2km 구간도 적당하다. 감사하게도 안동의 미식로드는 독립운동의 길과 묘하게 겹쳐 있다.

미각도, 건각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셈법이라면 임청각 동쪽 월영교에서 시작해도 좋다. 간고등어 찬에 헛제삿밥 쓱쓱 비벼 먹고 식혜로 입가심한 뒤 찰떡을 간식삼아 산책하듯 걷다보면 어느새 찜닭의 성지 안동구시장 앞이다.

1919년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한 안동교회.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1919년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한 안동교회.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100년 전 안동장터와 그 주변

3월에 들어선 지도 열사흘이라지만 봄볕은 습관처럼 지각이었다. 겨울 칼바람 날은 무뎠지만 몸을 움츠려야할 정도였다. 55세의 이상동은 웅크린 품 안을 더 여미지 못했다. 품 안의 방패연은 구겨지지 않아야 했다.

3.1만세 운동 소문은 이튿날 안동에 닿았다. '사람들이 독립 만세를 불렀고 경찰에 잡혀간 사람이 많았다. 개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많았다'는 얘기였다. 경찰이 총을 쏴 거리에서 즉사한 이도 여럿이라 했다. 유언비어와 불령선인이 귓등 넘어 들렸다.

소문이 정설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다녔던 영양 포산동 교회와 인연이 있던 안동교회에서는 현장 목격담이 간증처럼 퍼져나갔다. '그렇게 됨을 믿는다'는 아멘처럼 '그렇게 된 게 사실이었구나'라는 확신은 삽시간에 퍼졌다.

이상동이 태극기를 꺼내 들고 뛰었거나 혹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한 건 13일 오후 5시 30분쯤이었다.

안동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장날,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각과 공간이었다. 그러나 장터에서 경찰서까지는 백보 남짓. 맨눈으로도 보이는 거리였다. 곧 경찰에 붙잡힐 것을 예상한 결기였다.

이상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대통령 격)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동생이었다. 그가 혼자서 태극기를 모방한 종이연에 '대한독립만세'라 쓰고 만세를 외치다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은 만세 운동의 마중물이 됐다.

3월 13일 이상동의 1인 시위 이후 안동에서는 27일까지 총 14차례에 걸쳐 1만명 이상 참가한 것으로 기록됐다. 경북도내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3.1운동지인 안동장터.이곳에서 독립운동가 이상동의 1인시위 이후 안동지역에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태극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3.1운동지인 안동장터.이곳에서 독립운동가 이상동의 1인시위 이후 안동지역에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태극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안동 웅부공원.독립운동가를 잡아와 고문하고 재판하던 옛 안동경찰서와 대구감옥 안동분감이 있던 자리.지금은 안동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2019년의 그곳

이상동이 태극기를 들고 뛰었던 곳은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됐다는 크림치즈빵집과 가깝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빵가게에서 구운 빵 냄새가 닿을 만큼이다.

실제로 오십보 정도면 광장에 선다. 빵을 먹고, 혹은 사들고 나와서 오른쪽을 보면 태극기로 도배된 무대가 보인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육사 이원록과 석주 이상룡도 무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리 넓지 않다. 찜닭 골목 방향으로 시선을 뺏긴 이들은 놓치기 쉬운 공간이다.

안동 사람들은 흔히들 신한은행 앞 광장이라 부른다. 중앙로 문화의 거리 광장이란 이름은 언론에서나 보인다. 공교롭게도 신한은행이 민족 자본으로 시작된 조흥은행의 후신인 점이 더해져 안동시민들에겐 각별한 곳이다.

1980년대 민주화의 목청이 터진 곳도 여기였고, 몇 해 전 촛불집회도 여기서 열렸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을 받던 이재수 전 국군 기무사령관을 추모하는 분향소도 이곳에 있었다.

말이 광장이지 좁다. 공간적 개념의 광장은 아니다. 100명만 넘어도 꽉 들어찬 느낌이다. 온갖 주장과 신념을 받아내는 곳이라는 의미의 광장이다.

한편 이상동의 1인 만세 시위 이후 안동의 만세 시위는 다음 장날인 1919년 3월 18일에도 있었다. 이날 만세 시위는 꽤 규모가 커 자정을 넘겨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안동교회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 제작을 맡았다고 한다. 안동교회가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의 사적지에 들어가 있는 이유였다.

이후 1920년대 후반 좌우익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항일단체인 신간회도 안동에 생기는데 현재의 경상북도 유교문화회관에서 창립했다. 안동교회 바로 옆이다. 안동구시장에서 찜닭 먹고 갈 만한 곳 찾아 검색하면 #근대문화유산, #종교타운이라는 키워드로 등장하는 두 곳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임청각에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안동 웅부공원.독립운동가를 잡아와 고문하고 재판하던 옛 안동경찰서와 대구감옥 안동분감이 있던 자리.지금은 안동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영욕의 웅부공원

지금이야 안동의 주요 행사 무대로 쓰이는, 평일이면 애완견들이 산책을 하는, 노인들이 햇볕을 쬐며 담소를 나누는 웅부공원이다. 옛 안동경찰서가 있던 자리다. 안동군청을 비롯해 대구지법 안동지원도 경찰서와 붙어 있었다.

상전벽해다. 해방이 되기까지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판결해 감옥에 집어넣던 공간의 초입에는 지금 '평화의 소녀상'이 안동시민들과 함께 햇살을 맞고 있다. 변치 않은 것이라고는 안동대도호부 시절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수령 800년 느티나무뿐이다.

웅부공원에서 동쪽 600미터 거리에는 감옥이 있었다. 잡아와서 재판하고 가두는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구성된 관공서 배치였다. 대구감옥 안동분감이란 이름이었다. 안동교도소의 전신이다. 1921년 설치된 안동분감은 이후 안동교도소로 이름이 바뀌고 1985년 풍산읍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이곳엔 일반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감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 뒤편으로는 커다란 절집이 들어서 있다. 평화롭기 그지없다.

1996년 들어선 이곳의 압도적 규모 덕분인지 감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음은 당연해 보였다. 임청각에서 웅부공원과 문화의 거리로 가는 길에 있다. 신세동 벽화거리와 가깝다.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본명 이원록)의 문학관.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임청각에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 이상룡, 그리고 임청각

좀체 보기 드문 구조다. 명문가 한옥 집 바로 앞이 철길이다. 철길이 없다면 반변천과 만나기 직전 낙동강 지류가 흘러가는 배산임수 한옥이다. 만들다 덜 만든, 사연이 있어 보이는 왜소함이다. 점점 억지로 망가뜨려 놓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은 비단 심미적 욕구 불만 때문만은 아니다. 잊을 만하면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진동이 온다. 그나마 오가는 기차 편수가 줄어 이 정도다. 온종일 기차소리와 진동에 편치 못했을 지난 세월들이다.

집은 안식과 동의어다. 기운을 차려 다시 일을 도모하는 곳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집을 위해 기운을 차리기도 한다. 그래서 물리적 공간만으로 집의 가치를 풀이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와 같은 안분지족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흙벽에 쓰인 아이들의 낙서와 기둥에 그어둔 발육 표시는 500년 넘게 살아온 집에선 조선왕조실록 못지않은 역사였다.

할배의 할배, 그리고 또 그 위의 할배가 대대로 살아온 집은 1519년 처음 지어진 뒤 1767년 고쳐졌을 뿐 절반이 뭉텅 날아갈 운명일 줄 누구도 몰랐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파내버리고 싶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온 집안이 독립운동가였다. 대동아공영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모자라 국가 전복을 꾀한 테러리스트 양산지였다. 일본이 택한 복수는 1941년 놓은 중앙선 철로였다.

집은 반으로 쪼개놨지만 오래된 시골집이 뿜어내는 안온한 느낌은 쪼개 가지 못했다. 방문을 열면 시골향이라 불러도 좋을, 흙인지 나무인지 모를 천연의 방향제 향이 훅 끼친다. 반만 남았어도 임청각 일부는 고택체험 용도로 개방돼 있다.

이번 정부 들어 더 조명을 받는 임청각이다. 복원도 시간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의 독립 영웅'으로 이상룡 선생을 꼽았다. 그의 생가에 전국민적 발길이 이어진다. 문화재청도 안동시청도 자연스레 바쁘다.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본명 이원록)의 문학관.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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