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3·1 만세운동이 있었고, 그때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重慶)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듣고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걸 모르고 살았다면 제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애국지사 배선두(94) 씨는 "3·1 만세운동과 임시정부는 당시 독립투사들이 강한 확신을 갖고 일제에 대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했다. 1925년 의성에서 태어난 배 씨는 현재 경북에서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독립유공자다.
1943년 10월 열여덟 나이로 일제에 징집된 배 씨는 중국 난징(南京)지구에서 혹독한 일본군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조선 출신 병사 한 명이 찾아와 동그랗게 말린 종이를 건네줬다. 종이에는 '중국 충칭에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있다'는 글과 함께 간략한 주소가 적혀 있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어요. 알고 보니 그 사람은 광복군 소속으로 일본군에서 초모공작(적진에서 인원을 끌어들이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종이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이름이 죽 적혀있고, '함께 하자'는 이야기도 들었죠."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갖은 위기를 넘기며 간신히 탈출한 그는 중국군 유격대로 활동하며 1945년 4월 충칭 임시정부에 도착한다.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배속돼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작전 개시일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배 씨는 "소식을 듣고 임시정부 청사가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기뻐서 울기도 했지만, 우리 손으로 광복을 이룰 기회가 사라졌다는 안타까움의 눈물이기도 했다"면서 "결국 나라는 찾았지만 정부가 없으니 주권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본군과 싸워 지더라도 임시정부의 의지를 보여줄 기회를 놓친 게 아직도 가장 아쉽다"고 했다.
그는 3·1 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가 '3·1운동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100년 전 그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뿌리는 3·1 만세운동과 임시정부에 있어요. 남을 침범하지 않고, 가진 것은 함께 나누고, 국력을 길러 외세의 침입을 막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3·1운동 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가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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